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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맥서점/2020년대

[서점놀이] 최소한의 선의 - 문유석

2022.1.21 신논현역 지하 교보핫트랙스에서...

 

최소한의 선의 -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표지를 언젠가 보았던 기억이 이 책에 손이 가도록 이끌었다. 작가가 판사가 되어서도 책과 여행을 꿈꾸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는 점이 서문을 계속 읽어 내려가게 했다. 서문을 읽어 내려가던 중 이런 문장을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써왔던 나의 모든 책들처럼 이 책에도 나의 모든 편향과 주관이 듬뿍 담겨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편향과 주관이 포함되지 않은 책이 있을 수 있을까? 편향과 주관이 포함되지 않은 글이 책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 논문조차 본인의 주관에 객관성을 부여하기 위해 증명의 과정을 거치는 것일 뿐, 결국 세상의 모든 글은 자기의 편향과 주관을 논리적으로 풀어 공감을 얻고 보편성을 확보하는 과정이 아닐까? '너희에게 내가 찾은 (객관적인) 사실(또는 비밀)을 말해줄께'라고 말하는 많은 작가들과 달리 자신의 편향과 주관을 걱정하는 작가의 말에 정감이 갔다. 늘 객관성을 유지해야 했던 판사가 '헌법의 근본 가치들'을 논하기 전에 걱정이 앞섰을까? 그의 글이 궁금해졌다.

 

문득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뱃사공 바주데바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이보세요, 나는 학자도 아니고, 말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사색할 수 있는 능력도 없어요. 나는 단지 남의 말을 경청하는 법과 경건해지는 법만을 배웠을 뿐, 그밖에는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어요. 만약 내가 그것을 말하고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러면 아마 나는 현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소.

 

과학이든, 철학이든, 종교든 깨달음이란 것은 보편적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기존의 틀을 깨는 편향과 주관으로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깨달은 모든 사람이 그 깨달음을 전달할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것에 객관성을 부여하는데 성공한 사람들이 성인으로, 철학가로, 과학자로, 작가로 불리는 것이 아닐까? 아직 이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그의 글이 20년간의 판사 생활에서 깨달은 것들에 객관성을 부여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