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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맥서점/2000년대

푸코의 진자(3) - 움베르토에코, 1988

'기독교와 은비주의를 통해 바라본 인간에 대한 우울한 통찰'

움베르토 에코는 작품에 대한 도움말을 요구하는 독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작품이라는 것은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나는 내 작품과 독자 사이에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독자들을 가로막고 섬으로써, 혹은 작품을 가로막고 섬으로써 그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내가 자아서 훼손할 생각은 없다.>
글쎄, 이 작품의 몇%나 이해를 했는지 나 자신도 자신있게 이야기 못하겠지만, 그의 말처럼 어쩌면 -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책을 통해 배웠-생각해냈-다는 생각은 든다.
사실 '장미의 이름'에 비하면 많이 냉소적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장미의 이름'을 읽으면서는 여러 군상들의 각자의 입장을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이해도록 도와주는 그를 느꼈었는데, 이 책에서는 종교, 나아가서는 역사-우리가 배워온 역사-에 대해서 조차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음모이론 - '우수운 이야기' 로 만들어 버리는 그를 느꼈다. (물론 내 주관적인 느낌이긴 하다.)
아무래도 중세의 수도사들보는 은비주의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다룬다는 게 사람을 냉소적으로 만드는 거였을까?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많은 지식을 결합해서 그럴듯해 보이는 거대한 음모이론을 만든다. 그러고선 '리아'라는 인물을 통해 철저하게 비웃어버린다. 그러고는 결국 한 생명을 탄생하는 과정을 잘 들여다보면 은비주의자들이, 인간이 그렇게 찾아 해매는 진리를 모두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비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비밀은, 세포로 하여금 저희 본능의 지혜에 따르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짜 비밀이다."(1009)

그가 전해는 메세지를 제외하더라도 그의 박식한 지식과 그것을 엮어서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그의 능력은 정말 '이 사람, 천재다!'라는 감탄이 나오게 만든다.
조금 어려운 책이었지만 비슷한 내용을 다루는 '다빈치 코드'와는 비교가 안될만큼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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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발명해 낸 비밀에 진지하게 빠져들어 갈수록, 알리에를 일종의 저속한 대중의 하나로 파악하기 시작했던 것이다.(907)

<계획>을 고안한다. 고안해 낸 <계획>은 고안한 당사자를 정당화한다. 그래서 당사자는 책임을 느끼지 않게 한다. <계획> 그 자체에 대한 책임까지도. 돌을 던지고는 그 던진 손을 주머니에 감추는 꼴이다. 정말 <계획>이 실재한다면 <계획>대로 될 터이다.(941)

'당신네 계획은 전혀 시적이지 못해요. 못 봐줄 정도로 그로테스크해요. 호메로스를 읽는다고 해서 트로이아에 불을 지르러 가는 사람은 없어요. 호메로스와 더불어 트로이아의 불길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어떤 의미를 획득했어요. 그럼에도 '일리아스'는 세월을 견디면서 불후의 명작 노릇을 할 거라고요. 왜냐? '일리아스'는 명쾌하고 투명하니까요.(963)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 우리가 감당도 하지 못할 일을 꾀했던 것이네. '말씀의 서'에 나오는 말씀을 조종하여 골렘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야.'(1005)

규칙 1. 개념은 아날로지[유추]를 통하여 연결된다. 아날로지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하는 것은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모든 사물은, 어떤 단계에서건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규칙 2. 만일 모든 것이 결국에는 서로 연관될 수밖에 없다면, 관련성은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규칙 3. 관련성은 상투적인 것이어야지 창의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1095)

이것은 우리 일상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가령 주식 시장의 붕괴를 예로 들어 보자. 주식 시장의 붕괴는, 개개인이 장세를 그릇 판단하고 엉뚱한 거래를 하게 되고, 이 엉뚱한 거래가 집단화하면서 공황 상태를 야기시키기에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심지가 굳지 못한 사람은 이렇게 자문하게 된다. 이 음모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가? 이로써 득을 볼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니까 이 심지가 굳지 못한 사람은 적을, 이 음모를 꾸민 자를 하나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찾아내지 못하면,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책임감이나 죄의식을 느끼면 음모를 하나 꾸민다.....이해력 부족을 은폐하기 위해 음모를 조작하면 조작할수록 사람은 자기가 꾸며 낸 음모에 그만큼 집착하게 된다.(1098)

우리는 아무런 알맹이도 없는 텅 빈 비밀을 줌으로써 그들의 욕망을 일깨웠던 것이었다. 우리의 비밀만큼 속이 텅빈 비밀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우리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까짜라는 것만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알고 있던 비밀이었으니까(1103)

사춘기에는 모두가 시를 쓴다. 진짜 시인은, 장성하면서 그것을 파기하고, 가짜 시인은 그것을 출판한다(1107)

사람들은, <기회>를 노리면서 한평생을 보낸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 탄생과 죽음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 이미 지나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런 순간은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순간은 분명 존재했고, 그동안은 모든 계시의 순간이 그러하듯이, 더할 나위 없이 넉넉하고 찬란하고 풍부하다.(1122)

나도 오늘 밤에야 이것을 깨달았다. 자기가 쓴 진실을 독자에게 깨닫게 하려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1123)

삶을 켜켜이 살아 내고 그리하여 마침내 삶이 경험으로 가득 차게 되면 모든 것, 가령 비밀, 힘, 영광, 이 세상에 태어난 까닭, 죽어 가는 까닭, 그 모든 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었을지까지도 다 알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때 너는 지혜롭다. 그러나 그 순간 가장 위대한 지혜는, 네가 꺠달은 지혜가 뒤늦게 얻은 지혜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사람은,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을 때만 모든 것을 깨닫는다.(1132)

<말후트>의 신비는 존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존재를 떠나는 데 있는 것이다. 존재를 떠나면 결국, <다른 것들>이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1133)


[에코가 만든 음모이론]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켈트족은 일찍이 지자기류를 알고 있었다. 켈트족에게 이 비밀을 가르친 사람들은 아틀란티스 대륙인들이다. 아틀란티스 대륙이 가라앉자 대륙의 유민들은 이집트로 브리타니아로 뿔뿔이 흩어졌던 것이다....
이집트로 흘러들어간 아틀란티스인들의 은비학적 지식은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를 통해 모세에게 전해지는데,...모세는 이것을 <모세 오경>에다 암호로 녹여 놓았따. 카발라 학자들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803)

이로써 예루살렘 진영이 세 파로 나뉘어진 것으로 확인된 셈이야. 첫쨰는, 스페인과 프로방스의 카발리스트를 통하여 신성전 기사단 진영의 원동력이 되는 파, 둘째는 베이컨 진영에 흡수되어 과학과 금융업으로 전향한 파, 예수회가 맹렬하게 공격한 것도 바로 이 일파였어. 셋째는 러시아에서 자생하는 일파야. 러시아의 유대인들은 소상인이나 고리 대금업자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들은 이것 때문에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증오의 대상이었지.(856)

알라무트 요새 혹은 성채,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찾던 <바위>다.(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