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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맥서점/2000년대

푸코의 진자(2) - 움베르토에코, 1988

역시 푸코의 책은 쉽지 않다. '장미의 이름'에서도 책 중반까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쉽지 않더니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옮긴이의 말에 있는 작가의 이야기가 위안이 된다^^

<...내 책 머리에 길고 난삽한 글이 실려 잇는 데는 까닭이 있다. 원고를 읽어 본 내 친구들과 편집자들은, 너무 어려워서 읽으려니까 진땀이 나더라면서 처음의 백 페이지를 줄일 수 없느냐고 했다. 나는 두 번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거절헸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 낯선 수도원에 들어가 이레를 묵을 작정을 한다면 그 수도원 자체가 지닌 리듬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런 수고를 할 생각이 없는 사람은 내 책을 읽어 낼 수 없다. 따라서 난삽한 첫 부분은 나의 호흡을 따라잡기 위해 독자가 마땅히 처러야 하는 입문 의례와 같은 것이다....>

사실 나 역시 입문 의례를 잘 통과한 건지 그다지 자신이 없다....그나마 느낀거라면 그는 세권으로 나뉘어져 있는(한글판의 경우) 이 책에서 첫권의 절반은 '장미기사단'과 그와 관련된 역사에 관해서 나머지 절반은 브라질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독교와 토속신앙의 공존을 통해 종교라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두번째 책의 대부분은 은비주의와 중세 기사단과 관련된 것들을 다룬다.....결국 이 세가지가 에코가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운동이였을까?
아직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내가 이해한 거라면....그는 정말 대단하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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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 정보 사이의 연관성은 늘 존재한다. 찾아내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다. (409)

당신이 이해한 것은, 당신이 이해하고 싶었던 바로 그것입니다.(426)

'신도 또한 도처에 있다는 뜻이겠지요?'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진자가 나를 심란하게 만든다네. 진자는 내게 영원을 약속하지만 그 영원을 어디에 매달 것인지는 내 판단에 맡긴 셈이거든. 그러니까 진자를 섬기는 것만으로는 안 돼. 나름의 진자를 어디에 걸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지.....' (433)

이 양반들이 공유한 것이 정신적 기사도 같은 것이었는지 그것은 모르겠네만, 정파와 당파를 초월하는 유대감이 존재하는 것만은 확실하네. (에코는 여기서 이데올로기와 정권에 변화와 상관 없이 군인으로서 존재하는 유대감을 통해 은비주이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대감을 설명)(533)

"그(생티브)가 구상하던 정치 체제는 무정부주의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시나키체제였지요. 경제계, 사법계, 정신계(기독교와 과학계)의 권력을 대표하는 삼부회로 하여금 유럽사회를 다스리게 하자는 것이었지요. 말하자면 계몽주의적 과두 체제로 계급 투쟁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었는데, 글쎄, 이보다 더 정신 나간 얘기도 많잖소."(556)
(Synarchy. 함께 다스림 또는 조화로운 통치란 뜻의 그리스어에서 파생되었으며 공동 통치 또는 공동주권을 기본으로 하는 정치 체제.)

'물론이죠. 이해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시나키는 곳 하느님이다. 이거면 명쾌한 대답이 되었겠죠.'
'하느님'
'그래요. 인류는, 이 세계가 우연히. 혹은 누군가의 착오로 말하자면 의지가 없는 사원소가 미끌미끌한 고속도로에서 서로 부딪치는 바람에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거라고요. 따라서 하느님, 천사, 악마 같은 것들이 등장하는 우주적인 음모가 필요한 거죠.  시나키는 규모가 작다 뿐이지, 같은 음모 역할을 하는 거랍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하느님을 찾느라고 기차에다 폭탄을 장치했다고 대답할 걸 그랬군.'
'안 될 것도 없죠.'(572)

나는 마술의 세계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정교한 사실의 세계를 구별하기가 날이 갈수록 어려워졌다. 학교에서, 수학적, 물리학적 계몽주의의 선구자들로 배웠던 인물들이 미신의 어둠 속에서 불쑥불쑥 나타나고는 했다. 그들은 한 발은 카발라에 담근 채 실험실에서 과학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 실증주의 시대의 과학자들도 대학문을 나서기가 바쁘게 세앙스나 점성학회 같은 곳을 드나들었고, 뉴턴이 중력의 법칙을 발견하게 된 것은 은비주의적인 권능을 믿고 장미십자단의 우주관을 연구했기 떄문이라는 사실은 꽤 권위 있는 책도 인정하고 있었다.
나는 늘 의심이야말고 과학자의 의무라고 생각했는데 바야흐로 의심할 것을 가르친 대가들을 의심하게 된 것이었다.(643)

'핌, 원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존재하는 것은 육체뿐이에요. 이 아랫배 속은 아름다워요. 왜냐? 아기가 여기에서 자라고, 당신의 귀여운 꼭지가 영광과 환희에 떨면서 찾아들어가고, 기름지고 맛나는 음식물이 내려가기 떄문에 아름다운 거예요. 바로 이런 이유에서 석굴이, 갱도가 아름답고 소중해 보이는 거예요. 미로가 아름답고 소중한 것도, 미로라는 것이 원래 우리 내장과 닮았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요. 누구든지 아름답고 소중한 걸 발명하려면 거기에서 시작하는 수밖에 없어요. 왜냐? 당신도 거기에서 나왔으니까. 생육이라는 것은 늘 공동(空洞)에서 시작되는 거예요. 태초에는 혼돈과 부패가 자리하던 곳. 아, 그런데 보세요. 여기에서 인간이 태어나고 대추야자나무가 자라고, 여기에서 바오바브나무가 자란다고요.
높은 건 낮은 것보다 낫지요. 왜냐? 사람이 머리를 아래로 하면 피가 머리로 몰려서 못쓰거든요. 머리에서는 냄새가 별로 안나지만 발은 냄새가 너무 나거든요. 땅속으로 들어가 구더기의 먹이가 되기보다는 나무에 올라가서 과일을 따는 게 낫거든요. 다락방에 올라가서 과일을 따는 게 낫거든요. 다락방에 올라가지 않는 이상 위에 있는 것에 다치는 일은 별로 없지만 떨어져서 다치는 일은 잦아요. 바로 이 때문에 높은 건 첫사 같고 낮은 건 악마다운 거예요.
하지만, 조금 전에 내가 아랫배에 대해서 한 말도 옭기 떄문에, 결국은 아래 안쪽에 있는 것도 아름답고, 위 바깥쪽에 있는 것도 아름답기 때문에 둘 다 참이에요. <메르쿠리우스-연금술> 니 <마니카에니즘-마니교>이니 하는 것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요. (메르쿠리우스의 그리스이름인 헤르메스는 연금술이라는 말의 어원이된다) 불은 우리 몸을 따뜻하게 해주지만 추위는 기관지염이나 폐렴의 원인이 되기도 하죠. 더구나 4천 년 전 사람에게 불의 존재가 얼마나 신비스러워 보였겠어요? 그래서 불은 닭을 요리하는 데 요긴할 뿐만 아니라 갖가지 신비스러운힘을 가진 존재로 보였던 거죠. 하지만 취으는 닭을 보존하는 데 여간 요긴하지 않은 반면에 불은 잘못 만지면 이만한 물집이 생기는 수도 있죠. 알겠어요? 그래서 문가를, 지혜 같은 것을 보존하는 데는 산이나 높은 데(높은 건 좋은 거니까), 요컨데 석굴(좋고말고)이나 티벳의 만년설(금상첨화죠)이 필요했던 거예요. 지혜가 스위스의 알프스에서 오지 않고 동방에서 오는 까닭은 우리 조상들이 아침에 깨어나 비가 오지 말고 해가 제대로 솟아 주었으면 하고 바라면서 바라보는 방위가 동쪽이었기 때문이라고요.......
.....당신네 <악마연구가들>이 수천 년 동안 무슨 계시를 고대해 왔다고요? 그건 그 사람들 코앞에 있어요. 거울만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걸 가지고 왜들 그런대요?'(645)

<내가 다른 사람에 견주어 세상을 좀 더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난쟁이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