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다녀오면서 사온 책. 서점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의 제목이 미국에서 지내면서 느끼는 나의 감정과 닿아서 집어 들게 되었다. 카뮈가 알제리 태생 프랑스인이여서 문화의 차이로 인한 "이방인"을 의미할 줄 알았는데, 그가 말하는 이방(Strange)은 보다 광범위한 의미 - 관습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조리를 다룬다. 발간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고 하니, 현대의 눈으로 근대(1942년) - 특히 실존주의 -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소설은 해학적인 면모와 사회 비판적인 면모, 궁금증을 자아내는 진행을 두루 갖추고 있어서 읽다보면 책을 놓고 싶지 않게하는 맛이 있었다. 해학적인 면모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전반적으로 좀 암울하다. 1940년대의 카뮈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현대라 하더라도 세상의 관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는 점에서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줬다. 개인이라는 서로 다른 세상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관습, 그리고 페르소나. 적당한 수준은 어디쯤에 있을까?
그의 신념이란 건 죄다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도 못해.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없는 셈이지...
그(신부)는 어지간히도 자신만만한 태도군, 안 그래? 그러나 그의 신념이란 건 죄다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도 못해.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없는 셈이지. 나를 보면 맨주먹뿐인 것 같겠지. 그러나 내겐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이 있어. 신부 이상의 확신이 있어. 나의 삶에 대한, 닥쳐올 그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래, 내겐 이것밖에 없어.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굳세게 붙들고 있어. 그 진리가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만큼이나.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아. 나는 이런 식으로 살았ㅇ고, 다른 식으로 살 수도 있었어. 나는 이건 했고 저건 하지 않았어. 나는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은 했어. 그러니 어떻다는 거야?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나의 정당성이 증명될 저 신새벽을 여태껏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아. p.145
사람은 누구나 다 특권 가진 존재야. 세상엔 특권 가진 사람들밖에 없어. 다른 사람들도 역시 장차 사형 선고를 받을 거야. p.146
[이십오년 타향 생활 끝에 돈을 벌고 돌아온 아들이 신분을 밝히지 않고 재산만 보여주자 못 알아보고 밤에 살해한 여관집 주인(엄마)과 딸(누나) 이야기] 한편으로 그것은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또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이야기였다. 어쨌든 내가 볼 때 그런 결과에 대해서는 여행자에게도 좀 책임이 있었으며, 그리고 장난을 치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p.100
감옥에 있으면 시간 개념을 잃게 된다는 것을 나도 분명히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얘기가 별로 의미가 없었다. 하루하루의 날들이 얼마나 길면서도 짧을 수 있는지 나는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하루하루는 지내기에는 물론 길지만, 하도 길게 늘어져서 결국 하루가 다른 하루로 넘쳐 나고 말았다. 하루하루는 그리하여 제 이름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어제 혹은 내일이라는 말만이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 p.100
[법정 안 재판이 시작되기 전] 그 순간 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마치 같은 세계의 사람들끼리 서로 만나서 즐거워하는 어떤 클럽에라도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남아도는 존재라는, 좀 불청객 같다는 기묘한 느낌 또한 납득이 되었다. p.104
"이것이 바로 이 재판의 모습입니다. 모든 것이 다 사실이고 어느 것 하나 사실인 게 없습니다." p.112
모든 것이 나의 참여 없이 진행되었다. 나의 의견을 묻는 일 없이 나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었다. p.121
[사제가 개심을 요구할 때] 나는 죄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남들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죄인이었고, 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었고, 나에게 그 이상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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