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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맥서점/2008

콘트라베이스 - 파트리크 쥐스킨트, 1984

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 유혜자 | 열린책들 | 2000.02.01
평점259건 | 네티즌리뷰 239건 | 최저가 5,950원 구매하기
책소개 : 작은 활동 공간 내에서 사랑하고 존재를 위해 투쟁하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이야기. 한 예술가의 고뇌와 평범한 소시민의 삶과 사랑을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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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보통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사회"라고 부르는 울타리 속에서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여러가지 감정들을 모노드라마와 콘트라베이스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표현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계급사회"의 전형으로 오케스트라를 선택하다니 정말 기발하다....
그  안에 일과 열정, 자부심과 열등감, 허황된 사랑, 변화에의 두려움 등 여러 감정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비둘기" 때도 그렇지만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나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들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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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킨트의 글을 읽으면 적어도 세 번은 놀라게 된다. 우선은 이야깃거리가 될 성 싶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소재를 다루었다는 것에 놀라고, 다음은 집요하게 소재를 추적하여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결국 제법 실팍한 이야깃거리로 만들어 내어 놓되 그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 것에 대해 놀라고, 일반적으로 평범하다고 치부하여 무심코 지나친 것들의 속성에 담겨져 있는 심오한 의미들을 꺠달으며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역자평)

"그 당시만 해도 부부 관계 이외의 불륜의 관계란 지극히 비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거든요. 그런데 만약 그런 문제를 갖고 바그너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자---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트리스탄과 이졸데"란 작품은 나오지도 못했겠지요. 노이로제 때문에 그런 곡을 쓸 엄두도 못냈을 것이므로 그런 정도는 쉽게 추론이 가능합니다."

저는 큰 관현악단의 일개 단원일 뿐이니까요.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앞에서 셋째 줄에 앉는 연주자입니다. 맨 첫 줄에는 독주자가 앉고, 그 옆에는 독주자의 대리인이 앉습니다. 둘째 줄에는 팀의 리더가 앉고, 그 옆에 팀 리더 대리인이 앉습니다. 그런 다음에 일반 단원들이 앉지요. 실력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지만 도표에 의한 서열상 그렇게 앉아야만 되는 겁니다. 오케스트라 하면 상상이 되시겠지만, 인간사회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나타내 주기 위해서 엄격한 수직적 조직 체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특정한 사람이 사회 전체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집단이 그렇게 하는 거지요.(60)

그렇지만 오케스트라에서는 희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곳에는 냉엄한 능력별 계급 제도, 옛날 옛적에 내려진 결정을 그대로 고수하는 잔인한 계급제도, 진동음과 음의 빛깔에 따라 절대로 번복 불가능하며, 자연의 질서이며, 물리적인 계급별 차별화 제도 등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오케스트라에는 들어가지 마십시오...!(63)

그리고 카라얀도 그랬지요. 그사람은 심지어 점령지였던 파리에서 프랑스 사람들로부터 열화와 같은 박수 갈채를 받았을 정도이니까요.....음악은 사실 어떤 의미로 해석해 보면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가능했을 겁니다. 정치나 역사와는 반대되는 성격을 띠는 것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음악을 아주 평범하고 인간적인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간적인 영혼과 정신에 따라 본질적으로 구성된 결정체 말입니다. 그러므로 동양이든 서양이든, 남아프리카이든 스칸디나비아 반도이든, 브라질이든 수용 군도이든지 간에 한결같이 어느 곳에서든 음악은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일찍이 괴테는 음악은 영원하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음악은 지극히 지고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이해력도 그것과 같은 수준에 있을 수가 없고 그것은 모든 것을 통치하며, 어느 누구도 감히 그것을 말로 설명하려는 용기를 갖지 못할 만한 위력을 발휘한다...>(67)

그렇지만 지난 수년간 관련 자료를 연구하고, 직업상 면밀하게 검토하였던 사람으로서 모차르트가 불공정하게도 완전히 잊혀져 버린 동시대의 수많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단지 그 사람이 어린 나이에 재능이 뛰어나서 여덟 살에 이미 작곡을 시작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 사람은 이미 짧은 시간 안에 끝장을 본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습니다...그것은 예술 작품도 아닐 뿐만 아니라 아이를 혹사시키는 것이요,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그런 짓들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로는 모차르트가 작곡할 때만 해도 조금이라도 두각을 나타내는 음악가가 단 한명도 없었다는 거입니다.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베버, 소팽, 바그너, 슈트라우스 ....괴테는 자신이 활동하기 전의 문학이 백지장과도 같아서 운이 좋았다는 말을 그간 누차에 걸쳐 했습니다. 운이 좋았다고요. 정말 행운을 등에 지고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을 모차르트는 단 한 번도 시인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점에 있어서 그가 대단히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73)

야, 이 멍청아 조심 좀 해! 왜 맨날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거야, 바보 얼간이 같으니라고! 여러분, 삼십대 중반이나 된 제가 왜 항상 이렇게 훼방만 놓는 이 따위 악기와 함께 살아야만 하는지 그 까닭을 좀 설명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교통 편으로나, 연인과의 교제 면으로나, 음악적으로나 <항상> 방해만 하는 이 따위 것과 말입니다! 왜 저로 하여금 증오의 칼날을 번득이도록 만들게 하느냔 말입니다! 설명 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소리를 질러대서 죄송합니다.....하지만 언젠가는 제가 저 녀석을 박살을 내고야 말겠습니다. 언젠가는 끝장을 보겠어요....(74)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그 여자가 노래를 부를 때, 그 노래를 들으면,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다는 말 이외에는 아무 말씀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저를 그렇게 만들어 놓고, 그 여자는 초청받아 온 스타 아무, 아무개와 함께 어느 고급 생선 요리집으로 유유히 사라져 버리는 겁니다! 생선회나 생선 수프 같은 것이나 먹으러 가는 거죠! 그런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는 혼자 방음 장치가 된 방에 우두커니 서서, 그 여자가 부르는 노래를 단 한 음도 반주해 주지 못한 채, 이렇게 못생기기만 한 이 악기나 손에 들고서 님 생각에 가슴이나 저리도록 그대로 두고 말입니다....(83)

그래서 결국 저는 제 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 범주에서 최대한도로 남들 보기에도 정말 멋들어진 연주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였죠. 하나의 시험이 되리라고 생각한 겁니다. 제가 멋들어지게 연주하는 것이 그 여자의 귀에 느껴져서, 단지 저 때문에 뒤를 돌아본다면, 세라는 영원히 제 인생을 함꼐할 여자가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만약 뒤돌아보지 않는다면, 그럼 모든 것을 끝장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른바 애정 행각이라는 것이 이렇게 미신적인 면이 있는 겁니다.(85)

아니면 여러분들도 저처럼 손으로 밥을 벌어 먹고 사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계층에 소속되어 계시는 겁니까? 혹시 저 밖에서 지금 굴착기로 시멘트 바닥을 하루에 여덟 시간씩 뚫고 있는 인부들 가운데 오신 분은 안 계십니까? 아니면 쓰레기통이란 쓰레기통은 다 들고서 그것을 비우려고 쓰레기차에 엎어 버리는 일을 하루에 여덟 시간씩 하는 부들 가운데 오신 분은 안계십니까? 그런 작업이 당신의 능력에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이 아닌 다른 어느 사람이 당신보다 날렵한 못짓으로 쓰레기통을 비운다면 그것이 당신에게 일종의 모욕이 됩니까? 여러분도 저처럼 이상주의와, 자신을 잊고 지낼 만큼 열성으로 직업에 매달리며 사는 분이십니까? 저는 손에서 피를 흘리면서까지 왼손으로 네 개의 현을 있는 힘을 다해 꼭 누릅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말총으로 만든 활을 잡고, 오른손이 뺏뺏하게 굳을 때까지 그것으로 현을 문질러 댑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치며 저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있는 일종의 소음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과 제가 구별되는 단 한가지 특징은 제가 일을 가끔 연미복을 걸치고 한다는 것뿐입니다.(94)

폭탄이 떨어져서 모든 것이 다 파괴되고, 도시는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음악당은 불에 활활 타올랐어도, 지하실에서는 국립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아침 9시면 모여 연습을 하였다고 하더군요. 절망적입니다. 물론 저는 사표를 던질 수도 있습니다....절망적입니다. 어차피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렇게 하든지 아니면 저렇게 하든지....(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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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작은 활동 공간 내에서 사랑하고 존재를 위해 투쟁하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이야기. 한 예술가의 고뇌와 평범한 소시민의 삶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남성 모노드라마. 역할은 중요하나 아무도 그것을 선뜻 인정하여 주지 않는 것에 대한 평범한 남자의 절망과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안타까움, 제도와 인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자화상을 노래한다.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장편 소설 『향수』(1985)와 『좀머 씨 이야기』(1991)로 널리 알려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처녀작 『콘트라베이스』가 유혜자 씨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나왔다.

국 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콘트라베이스』는 쥐스킨트가 34세 되던 해 한 작은 극단의 제의로 쓴 책인데, 발간되자마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인 한 예술가의 고뇌를 그린 남성 모노드라마인 이 작품은 <희곡이자 작품으로서 우리 시대 최고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작가 쥐스킨트 자신은 이 책에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인 배우가 연극을 통해 그 악기가 가지고 있는 속성과 오케스트라에서의 신분적 위치를 바탕으로 한 평범한 소시민의 생존을 다루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비록 역할은 중요하나 아무도 그것을 선뜻 인정하여 주지 않는 것에 대해 느끼는 한 평범한 시민의 절망감과,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안타까움이 제도와 관습과 인식의 굴레에 얽매이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자화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984년 스위스에서 출간된 이래 『콘트라베이스』는 현재까지 독일어권 나라에서 가장 자주 무대에 올려지는 희곡으로, 연극 애호가들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예스24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