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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맥서점/2000년대

포르토벨로의 마녀 - 파울로 코엘료, 2007

코엘로의 가장 뜨겁고, 가장 담대한 신과 삶에 대한 메세지

연금술사, 베로니카..., 순례자, 그리고 네번째로 도전하는 파올로코엘료의 소설 '포르토벨로의 마녀'. 인터넷서점 책 소개의 첫 라인은 이렇게 시작을 한다.
'파울로 코엘료가 돌아왔다. 지금까지 쓴 모든 작품 중 가장 뜨겁고, 가장 담대한 작품을 들고서.'
그 말에 동감한다.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정말로 사랑하는데, 코엘료의 작품 연대기가 그의 작품 연대기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녀작인 '순례자'는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같다. 표현이 거칠지만 그가 담고 있는 사상을 작품에 담고 싶어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하야오 감독의 작품에는 인간과 자연, 공존과 화해가 담겨 있다.) '연금술사'는 '천공의 섬 라퓨타' 같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추어 이름을 날리게 된 작품이 되었다고나 할까. '베로니카...'는 '토토로'나 '마녀 키키'와 같이 조금은 다른 주제의 이야기에 간접적으로 그의 메세지를 담은 작품이다.
그런 관점에서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원령공주'와 같은 작품이랄까. 처녀작 때와 같은 강한 메세지를 완성도 높은 이야기에 담아서 전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역시 '가장 뜨겁고, 가장 담대하다'는 카피에 동감한다. 하야오처럼 코엘료가 늘 작품을 통해 담고자 하는 메세지는 이러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우리가 여기 존재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고, 그것에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뿐이오"(63)

단, 이번에는 사회적 통념을 깨야 한다는 메세지가 더 담겨 있다. 그가 선택한 '마녀' 또는 '여신'이라는 부분도 '남신'이 주도하고 있는 오늘날 사회적 통념에 대한 파괴를 위한 부분이라고나 할까?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기본적으로 한 여성(아테나-전쟁과 지혜의 여신)이 '어머니(여신)'에 도달하면서 일어나는 개인적, 사회적 현상을 담은 이야기이다 - 중세에는 이러한 여성을 '마녀'라고 불렀다. 그는 이야기를 통해 '기성 기독교(카톨릭을 포함)에 대한 비판', '춤을 통한 엑스터시(유체이탈?^^)', '서예와 정신수련', '집시이야기', '융의 철학', '신비주의', '다이어트(?)^^' 등 다양한 소재들을 너무 어렵지 않게, 재미있는 스토리에 하나로 담아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세삼 느낀 것은 다른 여러 작품들과 연결된 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여신'에 대한 주제는 이미 '성배'를 다룬 '다빈치 코드'에서 나왔던 주제이고, 접신(강신)의 과정이나 '신비주의(은비주의)'자에 대한 이야기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푸코의 진자'의 것과 연결되어 있다. '스승은 절대로 제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는 메세지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에서 나온 메세지 - 그 사람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해서 그 사람처럼 될 수는 없다- 와 연결이 되어 있고, 융의 철학 소개에서 나오는 '가면(페르소나)'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 '농담'에서 '20대는 자신에게 맞는 가면을 바뀌보며 써보는 시기이다.'라는 이야기를 연상시켰다(사실 이부분은 조금 차이가 있다.). 또한, 마지막 부분에서 '어머니'와의 만남이 깊어지면서 나무의 노래를 듣는 과정이나 '어머니'와의 접신을 바라보는 사회의 통념은 어린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바스콘셀로스의 '장미, 나의 쪽배'의 이야기도 생각나게 했다.
 
이책의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인터뷰 방식의 스토리 전개이다. 주인공을 '나'라는 인물이 바라보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인데, 그 '나'가 계속 바뀌는 형태로 보면 된다. 스토리 중반까지는 '나'가 바뀔 때마다 아테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는 것을 느끼는 재미도 솔솔하다. 사실 중반부터는 스토리에 무게가 실리면서 그러한 차이가 약해지긴하지만... 또한, 이러한 진행 방식은 나름 그의 사상을 대변하기도 한다.

"나는 절대적인 사실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은 각자가 인식한 바에 따라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낼 최상의 방법은 타인의 시각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28)

마지막으로 그는 책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세지를 통해서 자신의 메세지 '마녀 - 여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나에게 마녀란, 직관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는 여성, 자신을 둘러싼 것들과 대화를 나누는 여성,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이다.....아테나는 내 안의 여성성, 그리고 자비로움의 또다른 이름이다."

'여성성'에 대해 약간은 부정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던 나 자신 안에서 '여성성'을 돌아보게 해준다.

참, 스토리에 큰 상관은 없지만 책 마지막의 반전 역시 나름 재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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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자들은 삶의 의미를 찾을 때나 또는 지식의 길을 구할 때 네가지 타입의 전형을 통해 스스로를 파악한다.
첫째, 동정녀(성적 동정을 말하는 게 아니다)는 완전한 독립체로서 탐구하는 인물로, 그녀가 배운 모든 것은 직면한 고난에 홀로 맞서는 능력에서 얻어진 과실이다.
둘째, 순교자는 고통받고 체념하고 수난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겮ㄹ길을 찾아나서는 인물이다.
셋째, 성녀는 무한한 사랑과 조건 없이 베푸는 성정을 통해 삶의 진정한 존재이유를 찾는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마녀는 완전하고 끝없는 쾌락을 모색하는 길에서 자기 존재의 근거를 찾는 인물이다.
우리는 대부분 위의 네가지 여인상 중 하나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찾으려 하지만, 아테나는 네 가지 모두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25)

나는 절대적인 사실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은 각자가 인식한 바에 따라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낼 최상의 방법은 타인의 시각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타인의 시각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28)

내 앞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은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中)(47)

"당신을 사랑하니까. 비오렐을 사랑하니까. 내가 당신하고 아이에게 준 거라곤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내 꿈을 포기하게 만들었따는 원망뿐이었어. 우리가 조금 더 기다렸더라면 모든 게 달랐을 거야. 하지만 당신은 당신이 생각한 계획에만 열중했어. 그 안에 나도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잊었지."(63)

"아테나, 교회는 이혼한 사람에게 성체를 모시는 걸 허용하지 않는답니다."(72)

나는 교회의 바탕이 된 말씀을 외면하고, 교회라는 단체를 선택했던 겁니다.(74)

"성인이란 자신의 삶에 존엄을 부여하는 사람이오." 나는 말했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우리가 여기 존재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고, 그것에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뿐이오.....
"삶에도 정점이 있지. 모든 사람이 그러듯이 실수를 저지르지만 가장 어두울 때에도 마음의 빛을 결코 잃지 않는 사람들의 목표점이지...."(81)

"'엑스터시'가 자기 바깥에 존재하는 능력이라면, 춤은 여전히 자기 육체와 접한 상태로 새로운 차원을 발견하며 공간을 열어나가는 능력이라는 거예요." (90)

"내 경우는 춤을 통해서가 아니라, 소음과 움직임의 완벽한 차단, 즉 침묵을 통해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네."(109)

"그건 내가 알라께 다가가는 방식이지요. 서법을 통해 글자 하나하나의 완전한 의미를 찾는 작업이라오. 마치 의미를 새겨넣듯, 문자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기운을 글자 안에 쏟아붓는 거지."
"왜 인내가 그토록 중요한 거죠?"...."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지."(115)

"나는 두가지 것을 결합할 수 있어요. 동(動)과 정(靜), 그리고 기쁨과 집중을 말이죠."(121)

"글자와 글자 사이의 공백 속에 있는 것처럼 말이죠. 한 음이 끝나고 미처 다음 음이 시작하기 전의 그런 휴지 상태"
"그것은 바로 두려움으로 인해 생겨난 무아경이에요. 사람을 마비시켜 반응할 수 없게 만들죠. 육체가 반응하지 않으면 영혼도 그 자리에 존재하지 못해요."(148)

나는 설명해줄 수도 있었다. 그녀가 '마녀'가 되는 전형적인 수순을 밟고 있다고. 특유의 페르소나 때문에 천상과 지하세계를 접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으 파괴시켜보리는 마녀. 타인에게 에너지를 전하는 능력이 있지만 그 보답으로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마녀.(150)

우리는 현재형으로 말한다. 우리 방랑자들(집시)에게 시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오직 공간만이 존재한다.(156)

우리는 '신'이 우주를 만들었다고 믿지 않아. '신'이 바로 우주고, 우리는 그 안에 있지. 그리고 우주는 우리 안에 있단다. 비록 나는 그 '신'을 '여신' 혹은 '어머니'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모두의 안에 깃든 여성성처럼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존재란다....모든 것은 고통이 아니라 '창조'를 드높이기 위한 것임을 이해하게 될 때, 그분은 늘 우리와 함께 한단다."(177)

"믿음은 욕망이 아니예요. 믿음은 하나의 '의지'예요. 욕망은 늘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의지'는 힘이에요. 우리 주위의 공간을 변화시키는 힘이지요.(197)

"상관 없어요. 물론 저 사람들은 길을 잃겠지만, 진짜 흥미로운 장소를 찾아내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어요."(204)

'아버지' 신이 엄격함과 계육에 근거한 숭배의식이 결합되어 있는 반면, '어머니 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금기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종교가 규범을 공고히할 때마다 더 자유로운 영적 접촉을 갈망하는 일단의 이탈자들이 생겨나는 법이다. 이런 경향은 중세에도 있었다. 가톨릭교회가 세금을 올리고 호화찬란한 수도원 건축에 열중했을 때, 그에 대한 반발로 '마법'이라는 것이 나타났다.(208)

수천 년 동안 남성의 지배가 계속되었지만, 이제 우리는 '위대한 어머니'를 숭배하던 때로 돌아가고 있어요. 그리스인들은 그녀를 '가이아'라고 불렀죠. 신화에 따르면 가이아는 '카오스'에서 태어났어요. '가이아'와 함께 사랑의 신인 '에로스'가 왔고, 가이아는 (단성생식으로) 바다와 하늘을 낳았죠. 좀 더 친숙한 신비주의 용어로 말하면 '동정수태' 죠. 원죄 없이 잉태하는.(221)

'긍정적 사고'라는 신조 아래, 자신이 사랑받고 있고, 강하고 능력 있따고 떠들어대는 사람이 되지 않길 바라요....당신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증명하려 애쓰는 대신, 그저 웃으세요....유머를 가지고 자신의 번민을 직시하세요....믿으세요.(227)

융의 네단계 개인 발달 과정
1) '페르소나' - 연극배우가 쓴 마스크를 가리킴. 철학적으로는 이성적 본성을 가진 개별적 존재자를 뜻하며, 융은 이를 인간이 세상에 드러내는 '가면'의 얼굴로 해석했다.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 나는 좋은 부모인데 자식들은 이해를 못한다는 식.
2) '그림자' - 우리의 어두운 면. 우리가 '페르소나'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시도할 때, 우리 안에 빛이 밝혀지면서 우리 안의 소심함과 비열함의 거미줄들이 드러난다. '그림자'는 그곳에서 우리의 발전을 가로막으려하고, 대개의 경우 성공한다. 극복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 몇가지 흠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선한 존재이고 더 나아가고 싶어."
3) '영혼' - 모든 원천인 '세계의 영혼'으로 복귀를 의미. 본능은 더 예리해지고, 감정은 원초로 복귀하며, 삶에서 마주치는 표지가 논리보다 더 중요해지고, 현실에 대한 직관이 더욱 유연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것과 싸우기 시작하며, 예기치 못했던 방식으로 이에 대응하게 된다.
4) '노현자"(남), "위대한 어머니"(여) - 지속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터주게 될 때, 우리는 그 에너지를 매우 굳건하게 중심에 좋고 관장할 수 있게 된다.
"융은 미쳐갔어요....그는 자기 안의 '노현자'와 소통하게 되자. '필레몬'이라 불리는 정신이 자신을 인도하고 있다고 말하고 다니기 시작했지요."(257)

그중에서도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바로 '배꼽'입니다. 창조와 파괴를 관장하는 비슈누 신의 배꼽에는 생명의 순환을 관장하는 신이 앉아 있어요. 요가 수행자들은 배꼽을 차크라로 간주하는데, 차크라란 인간의 몸에 분포되어 있는 신성한 곳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원시부족들은 세상의 배꼼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신전을 세웠습니다. 남미의 주술사들은 인간의 진정한 모습은 빛을 발하는 알 형태를 최하고 있는데, 그 배꼽에서 나온 가느다란 선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더군요. 깨달음의 경지를 도형화한 '만다라'도 바로 이를 상징한 표상이지요."(258)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생의 25%는 스승에게서, 25%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25%는 친구들에게서, 나머지 25%는 시간을 통해 배운다."(276)

'아야소피아' - 신성한 지혜.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동로마제국 시대의 사원 이름이기도 하다.(282)

아야소피아는 무슨!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아테나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영혼 깊이 흐르는 강의 바닥을 건드리면서 '위대한 어머니'와 접촉했기 떄문에 나타난 현상일 뿐이었다.(287)

아테나의 영혼이 음악을 따르는 동안 그녀의 몸은 완전히 반대로 움직였고, 그러다가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마침내 '어머니'가 들어갈 공간이 열린 것이다. (290)

물리적 세계와 영적 세계 사이에는 일종의 막이 흐른다. 그 막은 색깔과 강도, 빛이 시시각각 달라진다. 신비주의자들은 그 막을 '아우라'라고 부른다....인간의 아우라들과 함께 섞여 나타나는 투명한 형상들이 있다. 사람들이 흔히 "유령"이라고 부르는 것이다.(291)

"나는 한 사람이에요. 동시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기도 하죠."(298)

"이 모든 건 내 안에 있었는데도 나는 그걸 몰랐어.....난 항상 나 자신으로 살고 싶어했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어. 언제나 남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교양 있게 말하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했지. 하지만 동시에 내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어.....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던 거야. 그 꿈에 나를 송두리째 맡겨버리면 되는 거였어. 그래서 고통받게 되면, 그냥 이를 악물고 견디면 돼. 고통은 곧 지나갈 테니까."(312)

스승은 절대로 제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여행을 함께하는 친구일 뿐이다.....스승과 제자 사이의 차이는 단 하나다. 스승이 제자보다 덜 두려워한다는 것. 그래서 스승은 제자와 함께 탁자에 앉거나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앉을 때,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절대로 "이렇게 하면 나처럼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유일한 길과 목적지가 있지 때문이다.(317)

"노예를 임금노예로 바꾸는 데 성공한 지금, 오늘날까지 인간이 이룩한 진보는 과학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것뿐이네. 인간은 아직도 먼 조상들이 해오던 질문을 계속해오고 있지. 한마디로 말해 인간은 전혀 진화한 게 없다, 이 말일쎄."(323)

세상에는 두 가지 전통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수세기 동안 우리가 같은 일을 반복하게 하는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는 전통이죠. 하지만 두번째 전통은 어렵고 불편하고 위험한 것입니다. 말일 이 전통을 따르는 신자들이 너무 많아지면, 예를 들어 개미들처럼 체계를 세우기 위해 상당한 대가를 치른 사회가 붕괴되는 것으로 끝이 날 겁니다.(324)

"남신만 존재한다면 먹을 양식과 이슬을 피할 곳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하지만 마침내 '어머니'께서 자유를 얻는 날, 우리는 이슬을 맞고 잠을 자더라도 사랑으로 살아가게 될 게야. 그리고 감정과 일 사이에서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되겠지."(324)

'뉴에이지'는 모든 것을 허용하며 기존의 어떤 교리도 존중하지 않는다.

대낮인 지금, 하늘은 구름에 가려 있고, 사람들은 저 구름들 너머 인간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전지전능한 신이 살고 있다고 믿고 있지요. 하지만 당신 아들을 보세요. 그리고 당신의 발을 봐요. 주위의 소리에 귀 기울이세요. 하늘보다 더 가까운 곳, 바로 여기 아래 '어머니'가 계시잖아요.(344)

"나무가 말하기 시작했어요."...."너무 예뻐요!"(350)

"성모님께선 이렇게 말씀을 마치셨단다. '내 아들은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난 내 아들이 자랑스럽고 정말 기뻐요.'"(357)

우리는 예속이 곧 행복에 이르는 안전하고도 유일한 길이라 믿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유의지는 한 개인이 감당하기엔 엄청난 책임감을 요구하고 번민과 고통을 가져다 준다.(360)

절제해서 먹되, 먹는 데서 즐거움을 찾으세요.......평생을 마른 채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대체 누가 만들어낸 것입니까? 내가 대답하지요. 영혼의 흡혈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흘러가는 시간의 수레바퀴를 멈추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아야소피아가 감히 장담하건대,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다이어트하느라 쏟는 에너지와 노력을 영혼의 양식을 살찌우는 데 사용하십시오. '위대한 어머니'께서는 아낌없이 주시는 동시에 지혜롭게 주신다는 사실을 이해하십시오. 그러면 흐르는 시간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살찌지는 않을 것입니다. 칼로리를 인위적으로 태우는 대신, 그것을 꿈을 이루기 위한 투쟁에 필요한 에너지로 승화시킬 길을 찾길 바랍니다.(366)

불행히도 우리는 '마녀(Witch)'라는 말에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마녀란, 직관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는 여성, 자신을 둘러싼 것들과 대화를 나누는 여성,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이다.....
아테나는 내가 이러한 통념에 맞서는 방법이자, 우리 사회가 채운 통념의 족쇄를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테나는 내 안의 여성성, 그리고 자비로움의 또다른 이름이다.(파울로 코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