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살 것인가?', '글쓰기 특강'에 이어 세번째로 만난 유시민 '작가'의 책. 호칭으로 '정치가'보다는 '작가'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의 글은 깊이가 있지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화려하지 않지만 힘이 있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본인만의 확실한 견해가 있다. 논리적이면서도 진솔한 그의 글은 비문학의 글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이 책에서 유시민 작가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했던 작업을 '국가'라는 주제로 옮겨서 정리한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대학 수업 내용을 기반으로 했 듯, 이 책 역시 읽고 나면 한 학기 정치학 수업을 들은 기분이 든다. 다양한 정치 철학을 최대한 객관적 관점으로 비교하고, 모든 국가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물론 작가의 시각과 생각은 충분히 녹아있다. 자신이 진보주의자임을 감추지 않고 자신의 '정의로운 국가'론을 펼친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중립적인 '공동체주의-공화주의'를 제안하 듯, 유시민 작가 역시 점진적 개량을 지지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치인들의, 국민들의 의식이 깨어나길 바란다. 결국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상적인 국가이겠지만, 나도 그가 꿈꾸는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절차와 제도의 집합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절차와 제도를 대하는 의식과 태도를 포함한다.
그 참사가 벌어진 날은 2009년 1월 20일이었으며, 시작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의 빈 건물에 철거민 서른두 명이 들어간 1월 19일 새벽이었다......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던 와중에 불이 났고, 농성자 다섯 명과 경찰특공대원 한 명이 그 불에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살아남은 농성자를 모두 체포했고, 법원은 전원에게 유죄판결과 징역형을 선고했다. 정부의 행동을 비판하고 대통령의 사과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면서 현장 근처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시위를 벌였던 인권단체 활동가들도 유죄선고를 받았다.
...국가는 억울함을 하소연할 최소한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그들을 '도시게릴라'로 규정하고 진압했다. 거기서 죽어간 시민들에게 국가는 과연 무엇이었나? p.25
첫째, 국가가 할 일을 제대로 했다는 주장이다...
둘째, 국가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는 견해다....
세째, 국가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시각이다...
넷째,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p.26
첫째는 국가주의 국가론이다. 이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전체주의 성향을 지녔다고 한다. 국가주의 국가론의 논리체계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세운 인물은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였다.
둘째는 자유주의 국가론이다. 존 로크에서 , 애덤 스미스를 거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까지 소위 고전적 자유주의자와 신자유주의 철학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 이론을 만들었다...
셋째는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창안한 이 이론은 150여 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지식인과 정치인을 끌어당겼지만 이젠 그 위력을 상실했다.
넷째는 목적론적 국가론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펼쳤던 이론이다. p.28
1. 국가란 무엇인가 1 - 합법적 폭력
1651년 영국 철학자 홉스가 정치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책 가운데 하나인 '리바이어던'을 출간했다. 홉스는 '사회계약'이 국가의 기원이라는 이론을 펼쳤다. 그의 주장은 명료했다. 국가는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인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세속의 신(Mortal God)이다. 국가는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이며 국가의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하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이므로, 국가는 숭배하고 찬양해야 마땅하다. p.29
홉스는 요즘 유행어로 '흙수저' 출신 영재였다...
홉스가 살았던 17세기 중엽 유럽 사회는 정신적,정치적 혼돈상태에 놓여 있었다. 갈릴레이와 요하네스 케플러가 지구의 공전과 행성의 운동에 관한 법칙을 발견해 고전철학의 세계관을 무너뜨렸고, 왕당파와 공화파의 투쟁으로 영국을 포함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 격렬한 사회적, 정치적 혼란이 벌어졌다. 홉스는 국가의 힘이 약해지자 민중의 삶이 도탄에 빠지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p.34
홉스는 전제군주제를 옹호했지만 당대 유럽의 군주들은 그의 국가이론을 반기지 않았으며, 심지어 불온한 사상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의 일부 내용이 교황의 권위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이단자 색출 종교재판에 회부될 뻔했으며,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는 군주를 폐위하고 새로운 군주를 세울 신민의 권리를 이야기해서 영국 왕실을 격분시키기도 했다. 교회와 전제군주가 세상을 세상을 지배했던 그 시대의 정치사회적 환경에 비추어보면 그의 사회계약론을 특별히 '반동적'이거나 '보수적'인 이론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며 자연인 홉스 역시 그런 협의를 받을 만한 철학자가 아니었다. p.35
전제정치가 싫다고 해서 홉스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 그는 전제군주제를 발명하지 않았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전제군주제와 국가폭력을 철학적, 이론적으로 정당화했을 뿐이다. p.40
홉스와 마키아벨리의 이론과 통치술은 오늘의 현실에서는 쓰임새가 없으며, 기껏해야 호사가들이나 가치를 인정하는 사상의 골동품처럼 보이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만약 권력에도 유전자라는 것이 있다면, 이것은 권력의 본성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권력자뿐만 아니라 통치를 받는 이민의 문화 유전자(meme)에도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 국가주의 국가론은 국가의 목적을 오직 하나로 규정한다.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그리고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인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다른 모든 가치를 희생시킬 수 있으며 어떤 수단이든 다 쓸 수 있다. 이런 이론이 현실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한 감정인 두려움을, 무질서와 범죄 또는 외부의 침략에 대한 본능적 공포감을 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p.43
2. 국가란 무엇인가 2 - 공공재 공급자
인간은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존재이다. 자유를 희구하는 생물학적, 사회적 본능은 그것을 실현하는 데 적합한 정치제도를 만드는 것으로 자기의 존재를 드러냈다. 전제군주제 국가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했던 국가주의 국가론이 입헌군주제나 공화제 국가를 꿈꾼 자유주의자들의 도전에 직면한 것은 자연스러운 사태였다. p.55
자유주의 철학자들은 홉스의 제자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가 일종의 사회계약에 의해 탄생했으며 국가의 임무가 범죄와 무질서, 외부의 침략에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는 견해를 승인했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계약의 세부 내용 가운데 주권자가 누구이며 국가권력이 어떻게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홉스와는 크게 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p.55-56
2-1 로크
로크가 '시민정부론'에서 펼친 국가이론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채택한 헌법의 기본 원리와 정확하게 일치힌다......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바를 벗어나 사적인 목적을 위해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주권재민'과 '법치주의', 이것 없이는 국가권력이 정당성을 획득할 수 없다. p.57
국가주의 국가론이 인민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려는 적극적 이론인 반면, 자유주의 국가론은 국가가 악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소극적 이론이다. 자유주의 국가론은 국가주의 국가론과 대립함으로써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내는 안티테지(변증법에서 '반')였다. p.58
홉스와 마찬가지로 로크도 왕당파와 공화파의 권력투쟁으로 잦은 정변과 혼란이 벌어진 시기에 살았다......홉스는 정치적 혼란 그 자체를 극복해야 할 악으로 보았지만, 로크는 항구적인 법률이 아니라 즉흥적이고 임의적인 명령으로 통치함으로써 혼란을 야기하는 권력의 행태가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뛰어난 지성을 지닌 철학자로서 거의 비슷한 시대를 살며 동일한 정치적 혼란을 경험했던 두 사람이 상반되는 국가론을 펼친 것이다. p.59
2-2 스미스
경제사상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책 '국부론'은 국부의 성질과 원인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단번에 바꾸어 놓았다. 스미스의 이론을 요약해 보자.
나라의 부는 왕의 재산이 아니라 국민의 부를 의미한다....... 국가의 부는 더 많은 사람이 더 생산적으로 일할수록 증가한다...... 사회가 생산에 필요한 토지와 자본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려면, 이기심을 충족하려는 시민 개개인이 스스로 알아서 계약하고 거래하고 교환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최선이다.
...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고 싶다면 개인의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의 자의적인 간섭과 규제를 철폐하라는 이야기다.
이 이론은 당시 유럽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세속의 신'으로 여겼던 국가를 특별한 성질을 지닌 일개 경제주체의 지위로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p.59-60
스미스는 국가의 의무를 세 가지로 한정했다. 첫째, 국가는 다른 나라의 폭력과 침략에서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군사력을 보유해야 한다...... 둘째, 국가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다른 구성원의 불의나 억압에서 보호하기 위해 사법제도를 엄정하게 세워야 한다. 셋째, 국가는 사회 전체에 큰 이익을 주지만 거기서 나오는 이윤이 비용을 보상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개인도 건설하고 유지할 수 없는 공공사업과 공공기구를 건설하고 유지해야 한다...... 국가는 세속의 신이 아니라 공공재 공급자에 지나지 않는다. p.60-62
스미스는 자유방임주의 경제이론을 창안함으로써 자본가의 계급적 이익을 옹호한 사람처럼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는 '국부론' 곳곳에서 집단적 궁핍에 직면한 노동자들의 처지에 연민을 표하면서, 분업의 발전이 노동자들을 빈곤에서 건져낼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했다. p.63
그러나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일종의 우화 또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은 보이지 않는 손이 언제나 제대로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증명했다. 이론적 파산은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시가 선고했다...... 스물두 살 수학천재 내시는 짧은 박사학위 논문에서 스미스가 논증한 조화로운 균형은 아주 예외적으로만 성립하다는 것을 수학으로 증명했다. p.63
...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다. 보수적인 정치인이나 경제학자, 기업연구소 박사들이 방송 카메라 앞에서 "이것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말할 때, 그들이 마음속으로 경배하는 수호성인은 바로 스미스이다. 그런데 국가의 역할을 확장하려는 진보 지식인과 정치인들도 '공공재'에 대한 스미스의 이론을 적극 활용한다. '국가의 공공성'을 주창하면서 되도록 많은 것들을 '공공재'라는 집합에 담으려고 한다. 교육, 보육, 의료, 주택 등이 모두 공공재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국가가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 둘 모두를 스미스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p.64
2-3 루소
로크는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데 그쳤지만 루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가 법치주의를 위반하는 경우 인민에게 정부를 무너뜨린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런 논리를 펴기 위해 그는 국가와 정부를 매우 엄격하게 분리했다...... 국가와 정부가 다르다는 것은 오늘날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가 군주제였던 루소의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당대의 현실을 고려하면 루소의 견해는 매우 독창적이고 심오하다고 할 수 있다. p.65
2-4 밀
자유주의 국가론의 철학적 토대를 완성한 인물은 밀이다...... 밀도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받아들여 공동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제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어떤 경우에 어느 정도까지 정당하게 구속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밀은 간단명료한 단 한가지 원리를 천명했다. 인간 사회에서 누구든, 개인이든 집단이든,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국가가 그 사람의 의지에 반해서 권력을 사용하는 것도 정당하다. p.69-70
밀은 홉스보다 200년 정도 늦게 세상에 나왔다. 그 기간에 철학자들의 관심과 고민의 초점은 국가에서 개인으로 옮겨갔다. 홉스에게는 개인이 국가를 이루는 '하나의 부분'이었지만 밀에게는 거꾸로 국가가 주체적 개인으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집합'이었다. 밀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었다. 개인은 공동체의 부속물이 아니라 자기 삶의 주체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인생을 살 권리를 지니고 있다. 설혹 그것이 사회의 다른 모든 사람들이 마땅치 않게 여기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부당하게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이나 사회도 그 사람의 자유를 구속하거나 제약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것이 자유주의 철학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p72
3. 국가란 무엇인가 - 계급지배의 도구
마르크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엄밀히 말해서 '국가란 무엇인가'를 물은 것이 아니었다. 홉스, 로크, 루소, 밀은 국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따져 물었다기보다는 국가가 무슨 일을 해야 하며 어떻게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살폈고, 국가의 기능과 바람직한 작동방식에 대해 고민했다. 국가가 무엇인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대답한 것은 마르크스가 최초였다고 할 수 있다. p.84
이렇게 보면 홉스부터 루소까지, 마르크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제시한 모든 국가론은 일거에 논리적 근거를 상실한다. 국가는 만인에게 평화와 자유를 보장하는 공동사회가 아니다. 국가권력은 하나의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조직한 힘일 뿐 인민이 사회계약을 통해 세운 공동의 권력이 아니다. 국가는 지배계급이 계급투쟁을 수행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의 국가론은 '도구적 국가론'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예전의 철학자들은 국가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 바탕 위에서 국가의 목적이 무엇이며 그 목적을 잘 실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인간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p.86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은 평지에서 돌출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는 개인의 주체성과 자유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자유주의 전통 안에서 태어났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이론에서 핵심지위를 가진 것은 노동가치론과 잉여가치론이다.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르면 오로지 노동만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생산수단에 대한 법적 소유권을 근거로 노동자들이 생산한 가치 가운데 노동자의 생존 또는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최소한의 몫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모두 이윤의 형태로 착취한다. 잉여가치론의 철학적 토대는 노동가치론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이론에서 노동가치론이 차지하는 지위는 현대 물리학 이론에서 중력의 법칙이 차지하는 지위와 같다. 그런데 노동가치론의 지적 소유권은 자유주의 경제학자 스미스에게 있다. 여러 측면에서 마르크스는 스미스의 제자였다고 할 수 있다. p.87
마르크스는 '빅 브라더'(Big Brother)나 철학자, 가장 지혜로운 자 또는 어떤 선택된 계급이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전체주의 사회를 원하지 않았다. 그가 꿈꾸었던 것은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였다. 계급적 적대관계가 없고, 삶의 주체로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개인들이 서로 상생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세상, 이보다 더 멋진 사회를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p.91
포퍼의 해석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는 혁명의 방법론이 아니라 순수한 역사이론이다. 경제와 권력정치의 발전과정, 특히 미래 혁명의 진행과정을 예측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이론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어떻게 하면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지, 국가권력을 탈취한 이후 어떻게 사회를 재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볼셰비키 혁명을 성공시킨 직후 레닌이 깨달은 것처럼, 마르크스주의는 실제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그런 문제를 다룰 줄 아는 사회주의자는 찾기 힘들었다. 마르크스의 책에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배분하는 사회에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 배분하는 사회로"라는, 아무 소용없는 슬로건 말고는 사회주의 경제에 관한 말이 한마디도 없었기 때문이다. p.94
현실적 위력은 사라졌지만 자본주의 비판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가 가진 생명력은 다 타버린 화로 밑바닥의 불씨처럼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진화의 시간이 아닌 역사의 시간에 그것이 큰 불길로 다시 살아날지는 알 수 없지만 영원히 죽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론은 좌절한 인류의 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때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며, 실현 불가능한 꿈을 향해 달려간다. 결코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별을 바라보며 가슴 설레는 것처럼, "한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에 대한 꿈은 언제든 사람을 다시 설레게 할 수 있다. p.100
4.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목적론적 국가론)
4.1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 - 플라톤
만물에는 모두 그 고유의 텔로스(telos, 목적)가 있다고 플라톤은 믿었다. 그가 국가의 텔로스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정의였다. 국가는 정의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공동체라는 것이다.
... 국가가 정의로우려면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텔로스를 충실하게 실현해야 한다. 지배자는 지배하고, 전사는 싸우고, 노예는 일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의에 관한 우리의 관념과 크게 다르다. 우리는 계급특권이 없는 것을 정의라고 하지만, 그는 계급특권을 정의라고 했다.
... 플라톤은 국가가 자기의 텔로스를 실현하려면 주권을 철학자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 물론 오늘의 가치기준에 비추어보면 플라톤은 비난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그는 노예제를 인정한 도시국가 아테네의 귀족이었다. 계급제도를 철학적으로 승인했고 여성을 가축과 동급으로 취급한 가부장제를 옹호했다. 국가와 정치에 대한 플라톤의 견해 가운데 그가 말한 그대로 우리가 받아들일 만한 내용은 별로 없다. 그러나 완력이 권력의 주된 원천이었던 시대에 엉뚱하게도 학식의 지배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플라톤은 자기의 시대를 넘어섰다. 그가 '철인왕'을 생각한 것은 지식과 지혜가 모자라면서도 완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휘두른 현실에 문제의식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p.106-108
4.2 군자가 다스려야 한다. - 맹자
맹자가 말하는 덕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측은지심, 나와 타인의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수오지심, 사랑과 정을 다른 사람에게 적절히 표현하는 사양지심, 그리고 그런 마음을 때와 장소에 따라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시비지심이다.
플라톤과 맹자의 국가론은 서로 다른 점이 많지만 한 가지는 같다. 바로 목적론적 국가론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국가는 선, 정의, 덕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111
4.4 악을 최소하 화는 방법 - 민주주의
포퍼는 플라톤이 정치문제를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라는 형태로 나타냄으로써 정치철학의 지속적 혼란을 야기했다고 타박했다.... "사악하거나 무능한 지배자들이 너무 심한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어떻게 정치 제도를 조직할 수 있는가?" 이것이 정치철학이 다루어야 할 올바른 질문이라는 게 포퍼의 주장이다.
... 포퍼는 이 이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해법으로 민주주의를 제시했다. 114-115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플라톤의 현자가 대통령이 된다 할지라도 자신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마음껏 하지는 못한다... 훌륭하고 지혜로운 최선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선한 일을 많이 할 수 없다면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은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마음대로 악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대가로 감수할 수밖에 없는 부작용이다.
이러한 강점과 약점을 시민들이 제대로 보지 못하면 민주주의 그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민주주의가 최선의 인물을 지도자로 뽑아 최대의 선을 행하게 하는 것이라고 오해할 경우, 선거는 자칫 '다시 실망하기 위해서 매번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는 비극적 이벤트'로 전락할지 모른다. 뽑아놓은 지도자가 알고 보니 최선의 인물이 아니었다거나, 선하기는 하지만 능력과 추친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실망하게 되고, 그래서 대중이 선거 자체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잃게 되면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교묘한 위선으로 잘 무장한 최악의 인물이 달콤하지만 실현할 수 없는 약속을 내세워 권력을 장악하는 중우정치로 타락할 수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결점 때문에 민주주의를 좋아하지 않았다. 116-117
5. 애국심은 고귀한 감정인가?
어디서나 애국심은 중요한 미덕으로 널리 인정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사랑하는 것일까? 국가 그 자체인가? 또는 국가가 체현하는 어떤 가치인가? 국가라는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같은 국가에 속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이익인가? 130
애국심은 특별한 면이 있다... 고귀한 사랑의 감정일 수 있는 애국심 뒤에는 결코 사랑하기 어려운 야수가 숨어 있는 것이다.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국가에 대한 증오심 또는 혐오감이 그것이다. 애국심은 내가 속한 국가를 사랑하는 감정인 동시에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국가를 배쳑하는 감정이다.
애국심의 배타적 성격은 사랑의 대상인 국가 자체의 배타성에서 파생한 것이다. 국가는 배타적인 공동체이다. 국가는 주권이 미치는 지리적 공간을 다른 곳과 구분한다. 폭력을 독점한 하나의 권력이 지배하는 공간이 바로 영토이다. 하나의 영토는 둘 이상의 권력에 동시에 귀속될 수 없다. 권력의 배타성이 배타적인 국경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132-133
피히테는 모든 어린이에 대해 강제적이고 보편적인 국가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독일 사회를 완전하게 재구성하고 싶었다. 그에게 국가는 단순한 국가가 아니라 영원성을 보증하는 세속의 신이었다. 이 세속의 신이 인간의 아들딸을 부모에게서 일시적으로 빼앗아 집단생활과 대중교육의 축복 속으로 집어넣는다. 어린이들은 여기서 살아 있는 어어로 애국심을 교육받아 국가의 목표와 자기 자신의 삶의 목표를 동일시하는 애국적 독일 국민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러한 교육제도가 영속되면 개인은 죽어 없어질지라도 민족과 조국은 영속한다. 태양 아래 영원한 것이 없다는, 모든 것이 헛되고 또 헛된 이 세상에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영원성은 오로지 민족과 조국뿐인 것이다. 따라서 애국심은 단연, 인간이 지녀야 할 모든 감정 가운데 가장 고귀하다. p.140
애국심에 대해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다. 애국심은 자기 국민만을 사랑하는 감정이다. 자기 마음의 평정과 재산을 희생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면서 적의 침략과 학살에서 국민을 보호한다는 신조이다. 애국심은 모든 국가의 국민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국민들을 침략하고 학살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던 시절의 개념이다. p.143
르낭은 철학자와 정치가들이 민족을 규정하는 데 동원한 모든 요소를 다 거부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 자신의 의지뿐이다. 그 의지의 뒷받침을 받을 때에라야 애국심은 가치가 있다. 인간은 어떤 외적인 기준의 강요로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어딘가에 귀속될 수 있다. 인간은 인종의 노예도, 언어의 노예도, 종교의 노예도, 강물의 흐름의 노예도, 산맥의 방향의 노예도 아니다. 인간의 건전한 정신과 뜨거운 심장이 민족이라고 부르는 도덕적 양심을 창출한다. 이 도덕적 양심이 공동체를 위해서 바친 희생을 바탕으로 자신의 힘을 증명할 때 민족은 정당하게 존재할 권리가 있다. p.148
톨스토이에게 민족애, 조국애 또는 애국심은 이성으로 근절해야 하는 유해하고 근거 없는 허위의 감정이었다. 피히테에 애국심은 어떤 대상을 위해, 즉 언어에 의해 규정되는 민족집단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려는 의지였다. 르낭에게 애국심은 어느 민족 또는 국가에 귀속되어 함께 어떤 가치를 실현하려는 자신의 의지에 대한 사랑이었다. 피히테는 독일인, 르낭은 유럽인, 톨스토이는 지구인이었으니, 세 사람은 결국 다른 것을 사랑했던 셈이다. p.150
6. 혁명이냐 개량이냐
사회를 계획하고자 하는 가장 열광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원하는 대로 계획할 수 있게 된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계획을 조금도 인내하지 못하는 가장 위험한 사람이 된다. 성자와 같은 일편단심의 이상주의자와 미치광이 광신자의 거리는 단지 한 발짝에 불과할 때가 많다.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노예의 길>
... 여론조사기관들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필리핀 국민들은 두테르테의 마약소탕전쟁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과 관련이 없는 다수의 국민들은 '나에 대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두테르테 정부가 폭력을 행사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p.162
사회혁명은 국가가 앓는 열병이다. 이 열병은 긴 잠복기를 거쳐 발생한다. 병의 조짐을 제때 감지하고 적절한 처방을 하면 국가는 더욱 건강해진다 그러나 병의 원인을 찾아 제거하지 않고 물리적 폭력으로 병증의 표출을 억압하는 대증요법에 집착하면 국가의 건강은 악화된다. 마침내 국가폭력으로도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을 때 열병이 폭발한다. p.167
그러면 국가가 소득과 부를 재분배하는 것은 어떨까? 그것도 소용이 없다. 기존의 질서를 바꾸지 않고 상층계급에게서 부의 일부를 가져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가난의 심연 속으로 던져주는 것은 굴뚝의 맨 위에 송풍기를 붙여 추운 곳으로 열을 보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내려보내도 열은 곧 다시 올라오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다.... 열이 끊임없이 위로 향하듯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데, 뜨거워진 공기분자더러 위로 올라오지 말라고 설득할 수는 없다. p169
톨스토이
아무리 생각해도 세속의 해법을 찾을 수 없었던 톨스토이는 결국 종교적 해결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가 제시한 방법은 각자가 욕망을 줄이는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계시하고, 부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세속적 욕망의 구멍을 막는 것 말고는 집안 골고루 열을 보낼 방법이 없다. 이것이 톨스토이가 얻은 결론이었다. p.169
칼 포퍼
포퍼는 자본주의사회의 현상유지를 강력하게 옹호한 신자유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무작정 현상유지가 선이라고 주장하거나 사회혁명을 비난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혁명이 불합리한 현실을 개선하는 합리적인 방법인지 심각하게 의심했을 뿐이다. p.173
... 그러면 점진적 공학(piecemeal engineering)이란 어떤 것인가? 포퍼의 표현에 따르면 '민주적 간섭주의'다. 포퍼는 19세기 유럽 자본주의 체제를 '방만한 자본주의'로 규정하면서, 이것이 정의롭지 못하며 비인간적이라는 점은 논쟁할 여지가 없다고 했다. 그의 진단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극심한 궁핍과 제한 없는 장시간노동, 폭행과 인권유린, 유아노동 같은 사회 악이 창궐한 것은 '자유의 역설' 때문이다. 여기서 포퍼는 마르크스와 같은 견해를 표명했다. "제한되지 않는 자유는 자멸한다." p.174
... 그러면 국가는 어떻게 간섭해야 하는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보호제도의 '법률적 틀'을 설계하는 제도적 간섭이다. 단결권을 비롯한 노동 3권 보장, 해고 보호, 유아노동 금지와 모성 보호, 산업안전과 산업보건을 위한 규제, 법정노동시간제한, 최저임금제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노동시장에 대한 국가규제가 모두 이 제도적 간섭에 포함된다. 둘째는 통치자가 설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권력기관을 동원하여 어떤 범위 내에서 조처를 취하는 '대인적, 직접적 방법'이다. p.175
... 포퍼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유토피아적 공학'을 도덕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다. 그가 사회혁명에 강력하게 반대한 이유는, 혁명가들의 진단이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폭력으로 이상국가를 실현하려고 하는 것은 그들이 대항해서 싸우고자 했던 악보다 더 나쁜 치료법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천국의 꿈은 지상에서 실현할 수 없다고 믿었다. p.177
하이에크
자유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며, 자유를 제약하려는 모든 시도는 전체주의로 귀착된다는 극단적 이론을 펼친 철학자도 흔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하이에크였다
... 포퍼는 전체주의를 혐오했지만, 하이에크는 전체주의를 두려워했다. 하이에크에게는 '겁에 질린 자유주의자'라는 이름이 어울릴 것이다. p.182
... 하이에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 그 자체라기보다는 경쟁이라는 자연적인 힘이다. 포퍼가 옹호했던 '민주적 간섭주의'는 경쟁의 작동을 북돋우는 한에서만 정당하다.
... 포퍼가 '유토피아적 공학'이라고 이름 지었던 사회혁명을 하이에크는 '사회계획'이라고 했다. 그런데 하이에크의 '사회계획'은 포퍼의 평화적, 민주적인 방법으로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까지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사회민주주의와 케인즈주의도 전체주의로 인도하는 사상이 된다. 포퍼는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경험과 지식의 부족을 들어 사회혁명에 반대했지만 하이에크는 혁명의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 그 자체를 신뢰하지 않았다. 사회혁명의 열정을 광신으로 간주했다. p.184
... 하이에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동선' 개념도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공동선을 위해 사회를 새롭게 계획하려는 상각과 열정도 당연히 인정할 수 없었다. 그의 논리는 매우 정연하고 치밀하다... 사회의 조직화가 지향해야 할 '사회적 목적' 또는 '공동의 목적'은 막연하게나마 '공동선' 혹은 '일반적 복지'나 '일반적 이익'과 같은 모호한 표현으로 제시된다. 그런데 이런 용어의 의미는 특정한 행동방식을 결정할 만큼 충분히 확정적이지 않다. 한 사람의 복지나 행복도 하나의 척도로 측정할 수 없다...'공동선', '일반적 복지'라는 관념 그 자체가 헛되다는 주장이다.
... 밀이 '자유론'에서 그랬던 것처럼, 하이에크도 철학의 가장 깊은 곳까지 논리를 끌고 갔다. 그런데 밀이 때로 주저하고 번민하는 자유주의자였던 것과 달리, 하이에크는 한순간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 냉정한 개인주의자였다. 하이에크의 주장을 요약해 보자. 개인주의는 논쟁의 여지가 없이 확실한 기본적 사실에서 출발한다. 가치의 척도는 각자의 정신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른 일반적 가치척도는 없다... 따라서 개인주의자는 모든 사람이 타인의 가치나 선호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치와 선호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최고의 선은 개인의 목적체계이며, 이것은 다른 그 누구의 어떤 지시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개인을 자기 자신의 목적에 대한 최종적 재판관으로 인식하는 것이 개인주의의 본질이다. p.185
... 하이에크에게 자유는 더 높은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자유는 그 자체로 가장 높은 정치적 이상이다.
... 포퍼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통해서 기회균등을 넘어서는 평등과 정의를 성취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러나 하이에크는 그 문마저 냉정하게 닫아버렸다. p.188
... 어떤 가치 또는 목표를 절대화하여 그것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거듭 강조한 하이에크의 견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나는 이것 자체는 옳은 견해라고 생각하며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하이에크가 이런 모토를 내걸고 펼친 이론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 스스로 자신이 반대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하이에크는 사실상 자유라는 단일가치 또는 하나의 목표가 사회 전체를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지상주의'라는 극단적 이데올로기에 사로 잡힌 것이다. p.191
... 하이에크는 전체주의를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스스로를 자유지상주의 이데올로기의 덫에 가두었다. 자유를 절대적으로 우월한 단 하나의 가치로 숭배한 이념의 덫이 그로 하여금 자본주의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았던 케인즈의 이론에 대해서까지 전체주의 혐의를 씌우게 만든 것이다. p.193
... 케인즈의 이론을 알았든 몰랐든, 이 이론대로 행동한 사람이 둘 있었다. 히틀러는 유럽 정복을 위해 자동차 전용도로인 아우토반을 건설하고 군수산업을 키우는 방법으로 정부지출을 키워 자본주의 역사에 가장 참혹했던 초인플레이션과 대량실업 사태를 극복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른바 뉴딜정책으로 대공황을 이겨냈다.... 이후 1970년대 중반 미국과 유럽 신업국가에서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진행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날 때까지 케인즈 경제학은 자본주의 세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p.194
... 케인즈 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공황의 가능성 또는 필연성을 인정한 것 말고는 아무 공통점이 없다. 마르크스는 그 진단을 토대로 자본주의에 시한부 생명을 선고했지만 케인즈는 자본주의에 영생을 약속했다. 그러나 국민경제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옹호한 탓에 케인즈는 공산주의자라는 의심을 받았다. 하이에크가 케인즈의 이론을 공격한 것은 전체주의에 대한 대중의 공포감을 대변한 것이었다. p.195
.. 그렇다면 하이에크는 더 좋은 사회로 가는 길을 어디에서 찾았을까? 답은 국가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하이에크는 사람들이 사회를 움직이는 원천인 미덕을 존중하지도 실천하지도 않는 현실을 개탄했다. 독립심, 자조,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 다수에 대항하여 자기의 소신을 지키는 각오, 이웃과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집단주의는 이런 미덕을 모두 파괴한다. 그 결과 전체주의 사회에는 개인의 도덕적 선택 기회가 점차 축소되어 결국 주기적인 대표자 선거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 고전적 자유주의 철학에서 뜨거운 심장을 빼버리고 냉철한 두뇌는 더 발육시킨 자유주의. 그것이 바로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 철학이다. 전체주의에 대한 하이에크의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케인즈주의를 수용했던 그 어떤 민주주의 국가도 전체주의로 가는 미끄러운 비탈에 굴러 떨어지지 않았다. p.197
전체주의를 피하려고 할 때 우리가 무엇보다 우선해서 선택하고 시도해야 하는 것은 포퍼의 길이다. 이 길이 열려 있는 곳에서 마르크스의 길이 열릴 가능성은 없다. 사회혁명의 문을 걸어 잠그고 싶다면 부지런히 점진적 개량을 시도해야 한다. p.199
7. 진보정치란 무엇인가?
인간은 모두 보수적이다 - 베블런
제도는 그 제도가 만들어진 시기에 사회를 지배했던 정신적 태도를 표현한다. 따라서 지금 존재하는 모든 제도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 어느 시기에 사회를 지배했던 관점과 사유습성을 체현한다.... 그런데 삶의 환경은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그 변화는 끊임없이 현실에 더 적합한 관점과 사고방식을 요구한다.... 베블런에게 진보는 어떤 당위적 요구나 지향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와 삶의 방식, 사유습성의 실제적이고 불가피한 진화를 의미한다. 진보는 피할 수도 멈출 수도 없다는 것이다. p.206
생산적 노동을 하지 않는데도 돈이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산적 노동을 하면서도 몹시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있음을 의미한다. 베블런은 그 둘이 약탈하고 약탈당하는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 유한계급은 부유하기 때문에 혁신을 거부한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은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혁신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이다.... 풍요로운 사람들은 오늘의 상황에 불만을 느낄 기회가 적어서 보수적이고, 가난한 사람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인 것이다. 생활환경 변화에 적당한 압력을 느끼면서 학습하고 사유할 여유가 있는 중산층이 가장 뚜렷한 진보주의 성향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p.210
현존하는 지배적 사유습성을 지키는 보수주의는 익숙한 것을 수용하고 낯선 것을 배척하는 인간의 본능에 부합한다.... 무너져도 단시간에 수월하게 복원된다. 진보는 본능을 거슬러 간다. 그래서 쉽게 단결하지 못하며 작은 오류만으로도 쉽게 무너진다. 한번 무너지면 복구하기 어렵다. 진보는 본능을 거슬러 나는 새,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는 물고기와 같다. 열정과 신념이 무너지면 바람에 날리고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게 된다. 평생 진보주의자로 사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p.212
진보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 - 김상봉
가장 좁은 의미의 진보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가장 넓은 의미의 진보는 인간 능력의 지속적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둘 사이 어디엔가,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진보라는 견해가 있다... 김상봉 교수에게 진보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세계적으로도 한국에서도 진보주의는 이미 죽었다... 자칭 진보정당들도 이제는 자본주의 전복을 꿈꾸지 않는다. 기껏해야 복지국가를 실현하자고 주장할 따름이다. p.214
인간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 - 이남곡
이남곡에 따르면 진보는 인간이 행복을 위해 자유를 확대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서 인간을 해방시켜야 한다. 이것을 지향하는 게 진보주의이다. 인간의 자유를 얽어매는 것은 세 가지다. 불합리한 제도, 물질의 결핍, 낡은 생각이다... 나는 이남곡의 견해가 진보와 진보주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적합한 '중용적'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p.217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되며 더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찬 기반을 제공한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마지막 문장) p.219
국가의 텔로스는 정의 - 아리스토텔레스
... 플라톤과 맹자의 사상을 검토할 때 '목적론'이 지성 발전의 미숙한 단계를 집배한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유치한 사고방식이라고 해서 옳지 않다거나 진리를 담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목적론에 따르면 만물에는 다 고유의 목적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국가의 목적은 으뜸가는 선을 훌륭하게 추구하는 것이다. p.220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국가론은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성을 내포한 이론이다. 그들은 민주정치가 중ㅇ우정치와 참주정치 사이를 오가면서 빚어낸 폐해를 목격했기에 민주정치보다는 철인정치를 선호했다. p.225
보론 - 복지국가론
복지국가론은 철학차원의 국가론이 아니다. 복지국가는 선을 행하는 국가의 한 형태, 또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과 제도의 조합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결국 복지국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은연중 자유주의 국가론과 목적론적 국가론의 결합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주요 기능은 세 가지이다. 첫째, 국가의 규제를 통해 일정한 수준에서 시민들을 경제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둘째, 조세 징수와 보조금 지급을 통해 소득을 재분배하는 일이다. 셋째, 시장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와 공동장비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복지국가론은 하나의 독립된 이념체계 또는 철학 차원의 국가론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사회적 위험에서 시민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적극 채택하고 실현해야 할 '제도와 정책의 조합'에 관한 이론이어서 우리가 이 책에서 살펴본 네 가지 국가론 모두와 어느 정도는 조화를 이룰 수 있다. p.226-234
8. 국가의 도덕적 이상은 무엇인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 니버
개인과 집단은 다른 것이다. "집단에는 양심이 없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니다. 이타성을 선으로 보는 직관적, 도덕적 가치판단은 우리가 소속한 집단 내부에서만 유효하다. 집단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이타성은 때로 불신과 비난의 표적이 된다. 극단적인 사례가 국가보안법이다.
...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에서 이러한 도덕의 분열이 일어나는 원인과 그것을 극복하는 방안에 대해 주목할 만한 견해를 제시했다.... 집단이 크면 클수록 그 집단은 스스로를 이기적으로 표현한다. 그렇게 될수록 그 집단은 더욱 효율적이고 강력해지며 어떠한 사회적 제재도 물리칠 수 있게 된다. 집단이 크면 클수록 공동의 지성과 목적에 도달하기 어려워지며, 불가피하게 순간적인 충동이나 직접적이고 무반성적인 목적과 연계를 맺게 된다.
... 니버는 "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Justice)"라고 했다. 개인을 중심에 놓고 보면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이타성이다. 그러나 사회는 여러 면에서 어쩔 수 없이 도덕성이 높은 사람들이 결코 도덕적으로 승인하지 않을 방법, 예컨대 이기심, 반항, 강제력, 원한 등을 사용해서라도 종국적으로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이 두 도덕적 입장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양자 사이의 모순도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조화되는 것도 아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는 각자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개념을 채택하자... 정의를 실현하려면 그들이 누가 무엇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을 실제로 집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권한을 다 가져야 한다. 누가 이런 지식과 권능을 가지고 있을까? 전지전능한 신뿐이다...
...정의를 직접 국가에서 찾으려 하거나 국가가 직접 정의를 실현하게 할 경우, 사회는 필연적으로 전체주의에 빠져든다.
... 홉스의 이론에 기대자면 헌법은 성문화된 사회계약이다.... 헌법에 따라 모든 국민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업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들을 묶어서 자유권적 기본권이라 한다...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 노동권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을 묶어서 사회권적 기본권이라고 한다.
시장은 정의를 실현하지 않는다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자기 책임 아래 전개하는 자유로운 경쟁이 만들어낸 소득과 부의 분배를 정의롭다고 인정할 수 있다... 첫째, 모든 사람이 동등한 참여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둘째,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 셋째, 만인이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동등한 주체로서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노사문제)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국가는 여기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 이 모든 것은 노동시장의 '자유로운' 근로계약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사용자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목적론적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심각하다. 국가의 목적은 정의를 세우는 것이다.... 정의가 훼손당하는 현실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목적에 위배된다.
진보자유주의
진보자유주의자는 어떤 가치 하나를 절대화하여 다른 가치를 종속시키거나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는다. 진보자유주의는 모든 형태, 모든 종류의 절대주의를 거부한다. 자유, 복지, 안전, 평등, 평화, 환경 등 헌법이 규정한 사회의 최고 목표 또는 최고 가치는 모두 평등한 지위를 가진다. 어떠한 우열관계나 종속관계도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하나의 가치를 절대화하여 다른 가치를 종속시키는 순간, 국가는 단일가치가 지배하는 전체주의로 흐를 수 있다고 본다. 전체주의는 필연적으로 국가의 정의를 파괴한다. 진보자유주의자는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개량의 길을 선호한다.
진보정치의 목표는 국가로 하여금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세우게 하는 것이다. 특정한 가치 하나만을 추구하는 '절대주의'로는 국가로 하여금 정의를 수립하게 하지 못한다. 진보정치는 열정을 요구하지만 '광신주의'를 배격해야 한다... 한마디로 줄여서, 진보정치에는 자유주의적 기풍과 철학이 필요하다. 이것을 갖추어야 우리나라 진보정치운동이 대중의 더 큰 신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9. 정치인은 어떤 도덕법을 따라야 하는가
정치는 모든 폭력성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인 힘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범우주적 인간 사랑과 자비를 역설한 위대한 대가들은 폭력이라는 정치적 수단을 가지고 일한 적이 없다. 자신의 영혼과 타인의 영혼을 구제하려는 사람은 이것을 정치라는 방법으로 달성하려 해서는 안 된다. 저치는 전혀 다른 과업을 가지고 있다. 정치의 과업은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만 완수될 수 있다. -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너 자신의 준칙에 따라 행동하라 - 칸트
... 모든 인간은 자율적으로 생각하면서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할 능력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존중받아 마땅한 이성적 존재이다. 칸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인간은 자연세계에 속하지만 동시에 자유세계에 속한다. 오직 욕구를 충족하고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서만 행동한다면,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 자연세계에만 속한 욕구의 노예로 행동하는 것이다.
칸트의 '자유'는 강제나 구속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칸트의 '자유'는 인간이 '경향성을 만족'시키는 욕구의 노예로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서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도덕법은 이성적 존재인 인간이 자유를 사용하는 규칙이다. 도덕법은 욕구의 만족이나 그 수단과 무관하다. 그리고 경험의 원리와도 무관하다. 도덕법은 순수이성의 직접적 명령이다. 인간은 경험의 도움을 받지 않고, 다시 말해서 선험적으로 이것을 인식할 수 있다. 칸트가 <실천이성비판>에서 말한 것을 그대로 옮기면, "순수이성은 그 자체만으로 실천적이고 우리가 도덕법칙이라고 부르는 보편적인 법칙을 인간에게 준다."
칸트는 행복과 선을 다르게 보았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도덕과 입법의 원리로 삼았던 제러미 벤덤의 공리주의 철학을 전면 거부한 것이다. 칸트에게 공리주의 철학은 도덕법이 아니라 '실용적 처세의 규칙'에 불과하다. 이 규칙에 따라 행동하면 최대한 욕구를 충족하는 행복을 얻는다. 그러나 도덕법의 도움 없이는 행복할 자격을 얻지 못한다. 행복만으로는 선이라고 할 수 없다. 칸트에게 최고선은 "도덕적으로 가장 완전한 의지가 최고의 행복과 결합하여 이 세상 모든 행복의 원인을 이루는 지성의 이념"이었다.
칸트는 형이상학과 관념론 철학의 최고수였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 중에는 칸트의 도덕법을 준수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칸트의 저서를 읽지 않고서도 스스로 정언명령 형태의 도덕법을 발견한다. 진보주의자들은 인간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착취하는 사회를 비판하면서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분투한다. 스스로 정한 행동준칙을 따르면서 그것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성찰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 정한 목표와 행동준칙을 신념이라고 한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 그 신념에 따라 사는 사람을 높이 우러른다. 그들의 행동은 칸트가 말한 '경향성을 만족'하는 활동으로 보기 어렵다. 그들이 벌이는 진보주의 활동의 동기는 어떤 이익에 대한 기대가 아니다. 그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정치는 결과로 책임지는 일 - 베버
베버가 정치인의 윤리와 관련하여 종국적으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책임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도덕법칙이 아니라 정치인에게만 특별히 엄격하게 적용해야 할 특수한 원칙으로 '책임윤리'를 제안했다. 베버의 책임윤리는 칸트의 도덕법과 충돌한다. 베버에 따르면 윤리적 지향을 가진 모든 행위는 화합할 수 없이 대립하는 두 가지 원칙에 따라 수행될 수 있다. 하나는 궁극적 목적윤리 또는 신념윤리의 원칙이다. 이것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대로 행하고 그 결과를 신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러나 책임윤리의 원칙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의 행동이 낳게 될 '예견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진보주의는 신념윤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진보주의자는 스스로 부여한 도덕법을 준수하면서 자기가 정한 목표를 일관되게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에게는 결과보다 동기가 중요하다. 설혹 자기가 추구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도 공동선을 추구하는 삶이라면 아름답다고 믿는다. 이것은 결과가 아니라 동기가 의미를 가지는 칸트의 도덕법이다. 이러한 도덕법을 따르는 진보주의자가 지식인으로 활동할 때는 큰 문제가 없다. 오로지 다른 사람과 논쟁할 뿐이어서 사회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적다. 하지만 정치에 뛰어들어 국가권력과 관계를 맺으려 할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동기만 중요하게 여길 뿐 결과에 대해 책임지려는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책임윤리의 부재가 빚어낸 정치적 비극은 무수히 많다.
졌지만 이긴 정치인 - 베른슈타인
(베른슈타인 - 바이마르공화국 초대 재무장관, 베버가 말한 '윤리적 역설'을 감당해 나가는 정치인. 독일 사민당에서 수정주의와 개량주의를 표방하여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난을 받음. 1차 세계대전 이후 나찌에 정권을 넘겨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체제를 세우려고 할 경우 "생산력의 엄청난 황폐화, 무의미한 실험들, 목적 없는 폭력행위 등과 같은 것만을 빚어낼 것이며,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지배는 사실상 혁명가 클럽의 폭력적 독재에 의해 지탱되는 혁명적 중앙권력의 독재형태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베른슈타인의 예측은 소비에트연방을 비롯한 모든 사회주의국가의 현실이 되었다.
무엇이 베른슈타인으로 하여금 수정주의와 개량주의를 선택하게 만들었을까? 나는 정치가로서의 책임의식, 자신의 이론과 자기가 하는 정치활동에 대해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성찰하게 한 균형감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데올로기의 교조는 무서운 것이다. 진보적 이념이 보수적 본능과 결합하면 경직된 교조가 된다.
베른슈타인은 자유주의에 대한 공격을 절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베른슈타인은 세가사적 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주의가 시기적으로 자유주의를 뒤따라 왔으며 정신적으로도 자유주의 사상의 적법한 상속자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사회민주당이 시민적 자유의 보장을 어떤 경제적 요구를 달성하는 것보다 항상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로운 인성의 형성과 보장이 모든 사회주의적 수단의 목적이며, 설사 그 수단이 외견상 강제성을 띠고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는 것이다.
책임 없는 자유란 없다. 이론적으로는 인간 행동의 자유에 대해서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천적으로는 자유주의를 도덕률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적 윤리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합정치와 책임윤리
국민은 '올바른 이념'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현해 줄 가능성이 있은 '능력 있는 정부'를 원했다. 지금도 국민은 시민들을 사회적 위험에서 보호하고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게 행동하면서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 그런 국가를 만들 수 있는 유능한 정당과 대통령을 원하고 있다.
진보의 힘은 '순수'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진보의 힘은 '섞임'에서 나온다. 진보를 추동하는 근본적인 힘은 인간의 보편적 이성이다. 사회의 진보는 인간 이성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진다. 하나의 이념이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사회에서 이성이 성장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의 이념이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정치조직에서도 이성의 힘이 자라기는 어렵다.
맺음말 - 훌륭한 국가를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는 국가를 원한다... 그런 국가에서 개인으로서 훌륭한 삶을 살려면 우리들 각자는 "먼저 인간이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시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훌륭한 국가를 만들 수 있고 훌륭한 국가에서 살 합당한 자격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익을 완전히 버리고 오로지 공익을 실현하는 대만 전력을 다하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공익 실현에는 아무 관심 없이 오로지 권력과 사익만 탐하는 정치인도 마찬가지로 흔하지 않다. 그들은 모두 나름의 신념을 지니고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그 신념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면서 자신의 정치행위가 가져올 예측 가능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의지를 많든 적든 가지고 있다...
.. 정치를 혐오스러운 직업으로 비하하고 정치인을 싸잡아 도둑놈 사기꾼으로 매도하는 것은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다. 그렇게 하면 주로 공익 실현을 추구하는 사람은 직업 정치를 떠나게 되고 권력을 좇는 사람이 정치와 국가를 장악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절차와 제도의 집합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절차와 제도를 대하는 의식과 태도를 포함한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시민들의 소망과 요구를 정부가 편견 없이 경청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 국민은 민주주의를 포기해서는 안 될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기꺼이 정치에 참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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