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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맥서점/2020년대

악마와 함께 춤을 - 크리스타 K. 토마슨, 2023

 

둘째딸이 작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빠에게 필요할 것 같은' 책이라며 건냈던 책이다. 다 읽고 나니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골랐는지 알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어쩌면 나는 감정 성인을 추구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내용에 공감이 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고정관념을 조금 깨 부수는 도끼가 되었던 것 같다. 책을 읽어가면서 작가가 어떤 사람일까 궁굼해졌는데, 내 추론으로는 둘 중 하나일 것 같다.

  1.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려고 엄청 노력했던 사람
  2. 감정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보며 이해가 안갔던 사람

나는 전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물론 두 경우 모두 작가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 책은 추천/비추천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을 것 같다.

 

추천

- 감정을 다스리려고 엄청 노력하지만 잘 안되서 힘든 사람

- 명상 등으로 감정을 충분히 다스릴 수 있게 되었지만 삶에서 공허감이 느껴지는 사람

 

비추천

- 살면서 감정 때문에 크게 힘들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

- 감정을 잘 통제하는 자신에게서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뭐 나도 지렁이(감정)와 썩 잘 지내고 있지 않나 싶다. 큰 딸이 아빠는 우울한 감정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물었다. 잠깐 생각해보고 이렇게 대답했다. '아빠는 이 우울을 즐겨.' 우울감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밉상인 얘기같지만, 실제로 나는 우울에 빠져있는 내가 좋다. 뭐 이정도면 내 정원의 지렁이와 잘 지낸다고 볼 수 있을까?

 


 

이 정원이 당신의 삶이며 분노와 시기, 앙심, 경멸과 같은 나쁜 감정이 잡초다. 최고의 정원은 잡초가 없는 정원이고, 최고의 정원은 나쁜 감정이 없는 삶이다. 이것이 바로 나쁜 감정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런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 나쁜 감정은 잡초가 아니라 '지렁이'다....꽃과 마찬가지로 지렁이도 정원의 일부이며 지렁이가 존재한다는 건 정원이 번성하고 있다는 뜻이다. 녀석들이 없어지길 바라는 건 조화롭고 풍요로운 정원이 없어지길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원을 있는 그대로 사랑스럽게 유지하고 싶다면, 이 꿈틀이 주민을 받아들일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p.14

 

 

[감정 수양형 성인]들이 보기에 나쁜 감정은 뿌리 뽑고나 억누를 것이 아니다. 그 대신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나쁜 감정을 수양하거나 변화시켜야 한다.....

긍정 심리학을 통해 널리 알려진 감사 연습도 '외면을 내면으로' 전략이다. 감사하다고 느끼는 모든 일의 목록을 작성하거나 매일 몇 분씩 시간을 내서 감사한 일을 세어 보라. 긍정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이런 습관은 감사하는 마음가짐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며 이를 통해 더 행복하고 건강해질 수 있다.....

...'공간 만들기'는 당신과 당신의 감정 사이에 약간의 거리르 두는 것이다.

...'공자에 따르면 예를 제대로 준수하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으로 변모한다. 이는 인자가 되는 방법 중 하나이며, 인읜 '선한' 또는 '인간적'을 뜻한다...인자는 증오를 와전히 삼가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것을 증오하도록 자신을 단련할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성품의 탁월성은 감정을 조절하고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는 성품의 탁월성 중 하나를 온화함으로 규정하는데 이는 지나치게 강한 분노와 지나치게 약한 분노의 극단 사이에 있다....

...이처럼 감정 수양형  성인은 감정을 길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나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p.72-84)

 

...우리가 나쁜 감정에 대해 갖는 의심은 대부분 내가 '감정의 이중 잣대'라고 부르는 것 때문이다. 감정의 이중 잣대란 긍정적인 감정에는 절대 부여하지 않는 속성을 부정적인 감정에 적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일례로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에 너무 깊이 자주 빠져들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기쁜이나 감사함을 느끼는 것을 경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p.91

 

나쁜 감정은 자기애의 표현이며, 그건 우리가 자신의 삶과 자신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 때문에 나타난다. p.106

 

성자는 부인할지도 모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는 자신을 미워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미워하길 원한다. 하지만 자신을 미워하는 건 삶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다. p. 120

 

니체는 의심의 눈초리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대신, '내해'의 해안선을 따라 항해하는 모험가처럼 정복하기보다 발견하려 해야 한다고 말한다. 감정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기꺼이 보내 주고, 감정을 이끌려고 하기보다는 따라가야 한다. 나쁜 감정이 생길 때는 그냥 그걸 느끼라는 것이다. p.122

 

우리가 일반적으로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 놓지 못하는 까닭은 감정을 그대로 두면 그 감정이 영원히 지속될까 봐, 그 감정이 우리를 집어삼킬까 봐 또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애착의 일부일 뿐이다. 나쁜 감정은 당신을 잡아먹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나쁜 감정을 느낄 것이고 그건 결국 사라질 것이다. p.122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할 때 직면하는 가장 강한 유혹은, 그 감정을 어떻게든 하려고 드는 것이다. 당신이 이웃의 새 차를 부러워한다고 해보자.

...한가지 방법은 자신을 가혹하게 평가하는 것이다....미성숙하고 물질주의적이라고 본인을 질책하거나, 또는 얼른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 긍정적인 것에 집중하려 할 수도 있다.

...때로 우리는 실낙원에서 사탄이 그랬던 것처럼 나쁜 감정을 다른 것으로 바꾸기도 한다. 반짝이는 새 차를 자기네 차고가 아닌 진입로에 주차한 걸 보라. 그는 분명히 새 차를 모두에게 자랑하고 있다. 이제 당신의 부러움은 이웃의 나쁜 행동에 대한 정당한 분노로 바뀐다.

...부러움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부러움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 중 하나는 '신 포도'로 여기는 것이다...이솝우화 '여우와 포도'에서 여우는 포도나무에 달린 포도를 먹으려다 실패하자, 포도가 시어서 먹고 싶지 않다고 자신을 속인다. 당신도 이웃의 차가 그다지 훌륭하지 않다고 자신을 속일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은 어차피 자동차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거나 지구를 생각해서 소비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되뇌기도 한다...하지만 이 또한 ..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p.124

 

다른 접근 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깨달음이나 시기심 때문에 반드시 뭔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 모든 고통은 당신이 자기 삶을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p.130

 

도대체 왜 나쁜 감정을 정당화 하는 걸까? 내 감정을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만들지 않고 그냥 느낄 수는 없을까? 우리는 나쁜 감정이 자신을 부정적으로 투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걸 설명하려 애쓴다. 감정이 자신에 대한 애착의 일부가 아니라 더 큰 대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쁜 감정을 사랑한다는 건 그걸 솔직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나쁜 감정을 정당화 하는 건 솔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p.131

 

4장. 분노

정의로운 분노를 옹호하는 사람은 정의로운 분노를 커피숍에서 흔히 느끼는 분노와는 다른 특별한 종류로 여긴다...우리는 다양한 분노를 느끼지만 각각의 대상에 고유한 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깨진 유리잔 분노', '커피숍 분노' 또는 '불평등 분노'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분노와 그 분노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있을 뿐이다.

...정의로운 분노를 정당한 분노로 보고 옹호하는 관점에는 단점이 있다...정의로운 분노만이 정당하다 생각하기 시작하면 자신의 분노를 재구성하기도 하는데, 심지어 분노가 불의하지 않을 때도 그렇다... 그리고 자신의 분노가 정의롭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자신의 분노 가운데로 끌어들이려는 경향이 더 강해진다. p.155

 

5장. 시기(Envy)와 질투(Jealousy)

우리 정체성의 일부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구성된다. 다시 말해 나는 관계를 통해 나를 정의한다. 나는 내 절친의 절친이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다른 사람을 절친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나는 누구일까?...

... 유독 자아 인식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관계가 있다. 그리고 이들과 연관될 때 더욱 질투에 빠지기 쉽다. 다른 사람을 일부로 받아들이면 그 사람에게 취약해진다. 그 취약성은 관계가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상대방이 항상 나를 해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뜻이다...

...철학자 로버트 노직은 사랑이 당신 밑에 '바닥을 깔아준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때때로 그 바닥은 곧 무너질 것처럼 느껴진다. 질투가 생기는 까닭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그 바닥이 무너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취약성은 우리가 사랑에 지불하는 대가이다. p.175-180

 

사람들은 시기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더 성숙하고 덜 물질적이며 자신감이 넘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이 시기심을 느끼지 않는 건 무감각하거나 야망이 없거나 오만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건 자신의 실패나 결점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방편으로 보이기도 한다. 비교가 항상 경쟁적이거나 치졸하거나 악의적인 것은 아니다. 떄로는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어떤 다른 가능성이 있는지 더 확실히 파악해야 할 때도 있다. p.188

 

시기 자체는 괴물이 아니다. 시기가 괴물이 되는 건 삶이 생각과는 다르다는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견디며 살아가기를 거부할 때다. p.192

 

7장. 경멸

경멸이 우리 삶의 일부인 까닭은 우리가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비교는 자아 형성의 일부이며 경멸은 자신감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타인을 경멸하는 사람은 대개 '나는 저렇지 않아.'를 중심으로 자신의 총체적 자아를 형성하려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기준으로 자신을 규정하면, 자신이 누구인지 절대 알 수 없다. 경멸은 결코 정체성의 핵심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삶의 일부로 존재할 수는 있다. 경멸은 단지 우리가 자신을 온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p.257-258

 

마무리

그냥 느껴라. 물론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감정을 그대로 놔두기 위해서는 감정이 독자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감정의 동립성은 우리가 항상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신념에 이의를 제기한다...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로 선택했지만 철학을 사랑하기로 결심하지는 않았다. 그냥 철학에 사로잡혔다....

... 감정의 독립성을 인정하면, 내가 누구인지와 내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린 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건 너무 불안정해 보일 것이다...

...이런 생각은 끔찍하므로 우리는 그런 생각을 마주하기를 꺼린다. 우리는 삶의 의미가 (부분적일지라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전제는 당신의 삶이 정확히 당신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게 해주는 암호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비극이다. 통제력을 절대로 잃기 싫다고 생각하면 삶의 풍요로움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다. (지렁이가) 무서워서 아예 정원을 피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라. 당신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고 마음을 연다. 두렵더라도 방어벽을 허물고 상대방을 받아들인다. (자신의) 내면의 야생을 같은 방식으로 사랑해보면 어떨까? p.267-271

 

"나는 대부분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내 안에서 더 높은 삶, 이른바 정신적 삶을 향한 본능과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삶을 향한 또 다른 본능을 느꼈고, 지금도 느낀다. 나는 이 두가지 본능을 모두 숭배한다. 나는 선한 것 못지않게 야생적인 것을 사랑한다."  철학자 소로 p.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