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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맥서점/2020년대

크눌프 - 헤르만 헤세, 1915

 

한국 여행 후 시차적응에 힘들어하다 꺼내들은 책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헤르만 헤세의 책을 읽으며, "그래, 이맛이지" 하며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최근에 '스토너'를 재미있게 읽은 터라 '스토너', '크눌프' 두 남자의 삶을 함께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남자의 삶은 전혀 다르면서도 닮아 있다. 아니, 같지만 서로 다르다고 말해야 할까? '스토너'의 작가 '존 윌리암스'는 자신의 소설을 읽고 슬펐다는 독자들의 평에 놀랐다고 한다. 아마도 '크눌프'의 결말처럼 친절한 설명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여행수첩을 그렇게 완벽하게 만들어 지니는 것은 크눌프가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그 안에는 고상하게 지어낸 이야기가 그럴 듯하게 적혀 있었으며, 공증을 마친 기재 사항들은 정직하고 건실한 삶이 거쳐온, 진실로 영광스러운 체류지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공식 증명서가 증명해 주고 있는 삶은 크눌프 자신이 지어낸 것이었으며, 그는 온갖 수단을 다해 이 위태위태한 허구의 삶을 계속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p. 15

 

누군가 자신의 행복이나 미덕에 대해 자랑하고 뻐길 경우, 대부분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양복 수선공의 경건함도 예전엔 그랬던 것이다. 사람들이 어리석음 속에 빠져 있는 것을 구경할 수도 있고, 그들을 비웃거나 동정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결국 그들이 자신들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p.52

 

그건 그렇고 소원이란 것 재미있는 면이 있어. 내가 만일 지금 이 순간 고개 한번 끄덕이는 걸로 멋지고 조그마한 소년이 될 수 있고, 자내는 고개 한번 끄덕이는 걸로 섬세하고 온화한 노인이 될 수 있다면, 우리들 중 누구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걸. 그러고는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남아 있기를 원할 거야. p.67

 

모든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영혼을 다른 사람의 것과 섞을 수는 없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갈 수도 있고 함께 이야기할 수도 있고 가까이 함께 서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각자 자기 자리에 뿌리 내리고 있는 꽃과도 같아서 다른 영혼에게로 갈 수가 없어. 만일 가고자 한다면 자신의 뿌리를 떠나야 하는데 그것 역시 불가능하지. 꽃들은 다른 꽃들에게 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향기와 씨앗을 보내지. 하지만 씨앗이 적당한 자리에 떨어지도록 꽃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야. 바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이곳 저곳으로 불어댈 뿐이지. p.79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하였고 조롱받았다.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받았고 또 네 안에서 내가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이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했었다.' p.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