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021년 일년간 미국에 있으면서 한국의 발전에 대해서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었다. 일년동안 생활해보니 드넓은 대지와 깨끗한 공기 말고는 더 나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디를 가든 한국에서의 환경이 더 편리하고, 더 고급스럽고, 더 다양했다. 물론 교육문제, 취업문제 등을 거론하면 할 이야기가 많겠지만, 80~90년대 한국과 미국, 2020년대의 한국과 미국을 비교한다면 어떤 느낌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 발전이 얼마나 많은 모순 위에 쌓아올려진 것인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겼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눈부신 경제 발전이 가져다준 풍요를 누리고 있는 나는 어쩌면 그냥 눈을 감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작가는 그의 섬세한 글들을 통해 그런 우리 세대의 마음을 다시금 눈뜨게 한다.
내가 늙어서 손자를 갖게 된다면, 나의 손자들은 그들의 증-고조부대의 터무니없는 시절 이야기를 듣고 낯을 붉히게 될 것이다. 일종의 경제 발작 시대로, 윤리-도덕-질서-책임이 모든 생산 행위의 적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을 그 아이들은 알아 지금 사람들이 내세울 업적을 형편없이 깎아내리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p.272
아버지가 그린 세상에서는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버리고, 바람도 막아버리고, 전깃줄도 잘라버리고, 수도선도 끊어버린다. 그 세상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비도 사랑으로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줄기에까지 머물게 한다. p.233
아버지는 사랑으르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그것이 못마땅했었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나의 생각을 수정하기로 했다. 아버지가 옳았다. 모두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예외란 있을 수 없었다. 은강에서는 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p.234
까르르 웃는 영희의 웃음 소리가 아버지보다 빨리 다리를 건너 집으로 들어오고는 했다. p.249
서쪽 유리창에 황적색 저녁놀이 와 닿았다 그것이 아름답게 느껴져 창가로 가 내다보았다. 대기 속 물질의 아주 작은 알갱이들이 빛을 운반해오는 것을 나는 볼 수 있었다. 흰벽이 저녁놀빛을 숲 쪽으로 받아 던졌다. p.303
나는 형도 잘 알고있겠지만 미국은 적은 인구로 전세계 자원의 거의 절반을 소비하고, 잘사는 그들 중 하나가 하루에 섭취하는 열량은 못사는 아프리카-아시아 빈민들 중 한 사람이 형편없는 식사를 통해 일주일에 취하는 열량보다 못할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자가 약자에게 주는 이런 종류의 충격이 인정되는 이상 우리의 상태도 인정을 받아 마땅하다고 나는 주장했다. p.275
할아버지가 평생을 두고 되뇌인 말은 '희생'이었는데, 그의 이 말은 그의 생애와 하나도 상관이 없었다. p.278
내가 아직 알 수 없는 것은 떠나는 순간에 무엇을 대하게 될까 하는 것뿐이다. 무엇일까? 공동묘지와 같은 침묵일까? 아닐까? 외치는 것은 언제나 죽은 사람들뿐인가?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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