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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맥서점/2020년대

흰 - 한강, 2016

 

비문학 서적들을 읽다가 글맛이 그리워져서 꺼내들은 책. 내가 접한 한강의 네번째 소설이다. 처음 읽었던 '채식주의자'에서는 하루키의 소설을 닮았다는 감흥 정도였지만, '소년이 온다'와 '희랍어 시간'을 읽으면서 나의 최애 작가 중 한명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흰'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여전에 유시민 작가가 한강 작가의 글을 묘사한 유튜브를 본 적이 있다.

그분의 글은 밀도가 아주 높아요. 한문장 한문장 얼마나 고민하고 쓴 건지를 느낄 수가 있어요. 그래서 한문장도 허투루 읽을 수가 없어요.

 

그분의 말에 나역시 공감한다. 한강 작가의 글은 조금 느리더라도 다시 돌아가서 읽는 과정을 자주 거친다. 문학도도 아니고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시 읽다보면 단어와 단어를, 문장과 문장을 얼마나 치밀하게 연결해 놓았는지 감탄하곤 한다.

이번 글은 소설이라기보다 자전적 에세이에 가깝다. 서문에 묘사한 것처럼 '날카로운 시간의 모서리에서...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 속으로 뛰어들어' 순간 순간 느꼈던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을 담아내었다. 작가는 책의 끝에 담긴 - 1쇄에는 없는 - 작가의 말을 통해 '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모국어에서 흰색을 말할 때, '하얀'과 '흰'이라는 두 형용사가 있다.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 '하얀'과 달리 '흰'에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흰' 책이었다. 그 책의 시작은 내 어머니가 낳은 첫 아기의 기억이어야 할 거라고, 그렇게 걷던 어느 날 생각했다. p.174 

 

대부분의 글들은 한달정도 그녀가 머물렀던 '바르샤바'라는 낮선 도시에서 느끼고 사색했던 내용이다. 개인의 느낌을 서술한 글의 모임이다보니 어떤 글들은 내 마음에 닿지 못한 것들도 있었지만, 글맛을 느끼고, 사물을 다시 보게하고, 질문을 던지고, 울컥하는 감정을 느끼기에 충분한 소설이었다. 아직도 몇몇 문장들이 머리 속을 맴돈다. 

 


시간이 날카로울 때가 있다....그렇게 날카로운 시간의 모서리 - 시시각각 갱신되는 투명한 벼랑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으로 내 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그 위태로움을 나는 느낀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 속으로, 쓰지 않은 책 속으로 무모하게 걸어들어간다. p.11

 

누군가 - 아마 그동안 이 집에 세들었던 사람들 중 하나가 - 송곳 같은 날카로운 것으로 그 문의 표면을 긁어 숫자를 기입해놓았다. 획순을 따라 나는 곰곰이 들여다보았다... 난폭한 직선과 곡선들의 상처를 따라 검붉은 녹물이 번지고 흘러내려 오래된 핏자국처럼 굳어 있었다. 난 아무것도 아끼지 않아. 내가 사는 곳, 매일 여닫는 문, 빌어먹을 내 삶을 아끼지 않아. 이를 악문 그 숫자들이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p.14

 

눈처럼 하얀 강보에 갓태어난 아기가 꼭꼭 싸여 있다. 자궁은 어떤 장소보다 비좁고 따뜻한 곳이었을 테니, 갑자기 한계 없이 넓어진 공간에 소스라칠까봐 간호사가 힘주어 몸을 감싸준 것이다.
이제 처음 허파로 숨쉬기 시작한 사람. 자신이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방금 무엇이 시작됐는지 모르는 사람. 갓 태어난 새와 강아지보다 무력한, 어린 짐승들 중에서 가장 어린 짐승. p.16

 

내 어머니가 낳은 첫 아기는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고 했다. 
달떡처럼 얼굴이 흰 여자아이였다고 했다...
...죽지 마라 제발. 가느다란 소리로 우는 손바닥만한 아기를 안으며 되풀이해 중얼거렸다. 처음엔 꼭 감겨 있던 아기의 눈꺼풀이, 한 시간이 흐르자 거짓말처럼 방긋 열렸다. 그 까만 눈에 눈을 맞추며 다시 중얼거렸다. 제발 죽지마...  p.18-19

 

달떡같이 희다는 게 뭘까, 궁금해하다가 일곱 살 무렵 송편을 빚으며 문득 알았었다. 새하얀 쌀 반죽을 반죽해 제각각 반달 모양으로 빚어놓은, 아직 찌지 않은 달떡들이 이 세상 것 같지 않게 곱다는 것을...
엄마가 말한 달떡은 찌기 전의 달떡인 거야, 그 순간 생각했었다. 그렇게 깨끗한 얼굴이었던 거야. 그러자 쇠에 눌린 것같이 명치가 답답해졌다. p.20-21

 

서리가 내린 흙을 밟을 때, 반쯤 얼어 있는 땅의 감촉이 운동화  바닥을 통과해 발바닥에 느껴지는 순간을 그녀는 좋아한다. 아무도 밟지 않은 첫서리는 고운 소금 같다. p.44

 

언젠가 만년설이 보이는 방에서 살고 싶다고 그녀는 생각한 적 있다...
...흑백영화 한편을 그녀는 보았다. 주인공 남자는 일곱 살에 아버지를 잃고 조용한 성품의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성년이 되어 어머니를 떠난 그는 결볍적일 만큼 윤리적인 태도를 지니고 살아가게 되는데, 선택의 순간마다 어째서인지 히말라야의 설산에 눈이 내리는 압도적인 풍경이 그의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그는 누구도 쉽게 내리기 어려운 결정을 하고, 그 결과 끊임없이 고초를 겪는다... 결국 모함에 빠져 직장에서 쫓겨난 뒤 혼자 돌아온 방에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아득한 설산의 계곡과 봉우리들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운다. 그가 갈 수 없는 곳. 얼어붙은 아버지의 몸이 숨겨진,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얼음의 땅. p.52-53

 

눈보라
얼굴로, 몸으로 세차게 휘몰아치는 눈송이들을 거슬러 그녀는 계속 걸었다.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 p.60

 

그전에 그녀는 상처 난 손으로 소금을 집어본 적이 있었다...'상처에 소금을 뿌린다'는 것이 글자 그래도 어떤 감각인지 그때 배웠다...
...소금으로 언덕을 만든 뒤 관람객들에게 거기 맨발을 얹도록 하는 설치 작품의 사진을 그녀는 얼마 뒤 보았다... 그늘이 져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관람객이 의자에 앉아 그 언덕의 비탈에 두 맨발을 올려놓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그렇게 있었는지, 흰 소금 산과 여자의 몸이 자연스럽게 - 기히하게 아프게 -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려면 상처가 없는 발이어야겠지, 사진을 들여다보다 그녀는 생각했다. 곱게 아문 두 발이라야 거기 얹을 수 있다. 그 소금 산에. 아무리 희게 빛나도 그늘이 서늘한. p.62-63

 

첫 딸아이를 잃은 이듬해 어머니는 두번째 사내 아기를 조산했다... 그 생명들이 무사히 고비를 넘어 삶 속으로 들어왔다면, 그후 삼 년이 흘러 내가, 다시 사 년이 흘러 남동생이 태어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만일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면, 지금 나는 이 삶을 살고 있지 않아야 한다.
지금 내가 살아 있다면 당신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어둠과 빛 사이에서만, 그 파르스름한 틈에서만 우리는 가까스로 얼굴을 마주본다. p.109

 

언니가 있었다면,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나보다 꼭 한 뼘 키가 큰 언니. 보풀이 약간 일어난 스웨터와 아주 조금 상처가 난 에나멜 단화를 물려주는 언니. p.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