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맥서점/2008

비둘기 - 파트리크 쥐스킨트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둘기(양장본) 
파트리크쥐스킨트 | 유혜자 | 열린책들 | 2006.04.10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에 푹 빠진지 10년이 지나서 다시 펴본 그의 소설에서
다시 한번 인간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준다...

비둘기는 사람과 변화을 피해 '50년'간 '안정'을 유지했던 <조나단 노엘>의 평화가 이른 아침 작은 창문을 통해 찾아온 '비둘기' 한마리로 인해 무참히 깨지고 '자살'에 이를뻔 하게 만드는 24시간의 이야기...
(이번에 보면서 영화 '폰부스'가 이소설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이 소설은 유독 희극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정말이지 냉소적인 농담이랄까....
역자가 이야기 한 것처럼 "특수 현미경을 통하여 치밀하게 관찰한 것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마음의 갈래를 한올 한올씩 정교하게 풀어"놓은 느낌이다.

비둘기에서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연약함을 묘사할 때는 나 자신마져도 저자 앞에서
무장해제 당하는 느낌이 들기도하고,
희극적인 과장에서는 주인공인 '조나단' 할아버지한테 조금은 심하다는 생각마져 들기도 한다.

"향수"나 "좀머씨 이야기"는 조금은 무겁게,
"깊이에의 강요", "콘트라베이스"는 조금은 과장된 어조로 풀어나가지만
결국 공통된 주제는
"두꺼운 껍질 속에 숨겨져 있는 쉽게 깨어질 수 밖에 없는 연하디 연한 인간"이 아닐까?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인터뷰도 피하고 시상식도 피하는 기이한 은든자이며 "향수"의 문구처럼
"날 좀 내버려줘"라고 외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소설에서 그는 '조나단' 할아버지를 통해서 이렇게 외치고 있는 건 아닐까?
"<도대체 사람들이 왜 안오는 걸까? 왜 나를 구출해 내지 않지? 왜 이렇게 쥐죽은 듯이 조용한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지?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나 혼자서는 절대로 살 수가 없단 말이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해본다....
나의 삶에 있어서 "비둘기"는 무엇일까?
 
-----------------------------------------

"새는 고개를 비스듬히 옆으로 누인 채 왼쪽 눈으로 조나단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눈, 작고 둥그스름한 원반형이었고, 가운데가 까만 갈색으 그것은 보기에 너무나도 끔찍스러웠다. 그것은 마치 머리털에 꿰매어 놓은 단추처럼 보였고 속눈썹도 없는 듯이, 광채도 없이, 그냥 무턱대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끔찍스럽게 무표정한 시선을 밖으로 내던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 눈 속에 교활한 머뭇거림이 숨어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또 어떻게 보면 그것은 무표정하거나 머뭇거리는 듯 보이지 않았고, 외부의 빛을 몽땅 빨아들이기만 할 뿐 자기 자신은 빛을 전혀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카메라의 렌즈처럼 생명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떤 광채나 희미한 빛조차도 그 눈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살아 있는 흔적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할 눈이었다. 바로 그 눈이 조나단을 뚤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너는 이제 늙었고 끝났어. 기껏 비둘기한테 놀라 자빠지다니! 비둘기 한마리가 너를 방안으로 몰아넣고, 꼼짝 못하게 만들고, 가두어 놓다니! 조나단, 너는 이제 죽은 목숨이야. 설령 지금 당장 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곧 그렇게 될 거야. 네 인생은 실패한 거야. 한낱 비둘기가 망쳐 놓았으니 넌 망한 거야. 넌 새를 죽여야돼. 그러나 넌 그걸 절대로 죽이지 못해.......더구나 무장 경비원의 근무 규정 제1조를 보면 오히려 그렇게 하라고 명시되어 있지. 네가 사람을 향해 총을 쐈다면 어느 누구도 너를 비난하지 않을꺼야. 그렇지만 비둘기를 그랬다면? 비둘기를 어떻게 쏜단 말인가? 그것이 퍼덕거릴 테니까 총알이 쉽게 빗나갈 테고, 비둘기를 총으로 쏜다는 것은 야만적인 불법 행위요 금지된 짓이니까 결과적으로 직무상 부여 받은 무기를 압수당하고 직장을 잃게 되겠지. 비둘기를 총으로 쐈다고 감옥으로 끌려ㄱ 갈지도 모르지. 아니, 넌 그것을 절대로 죽일 수 없어. 그렇다고 살수도 , 그것과 더불어서 함께 살 수도 없어. 결코 안돼. 비둘기가 안에서 살고 있는 집에 인간이 같이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 비둘기는 혼란과 무질서의 대명사가 될 거야. 예측을 불허한 채 울면서 아무데로나 마구 돌아다니고, 발톱으로 할퀴는가 하면 눈을 콕콕 찌르기도 할 비둘기, 쉴새없이 집을 더럽히고, 무시무시한 박테리아 균을 털어 놓거나, 뇌막염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를 몰고 다닐 비둘기........넌 방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할 거야. 굶주려 죽게 될 거야......넌 소방관을 찾을 거야. 겨우 비둘기 한마리 때문에 말이야! 집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비웃음 거리가 될테고, 근방에 사는 사람들의 경멸의 대상이 되겠지........<<저것 봐, 노엘씨가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구조를 요청했대!>>.....오! 불쌍한 조나단. 네가 처해 있는 현상황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어. 넌 망했어>"

"경비원이 스핑크스와 같다는 생각이었다. 뭔가 행동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다만 서 있음으로 해서 역할을 다하는 의미에서 그랬다...."내가 너를 막을 수는 없지만, 넌 반드시 나를 통과해야만 한다. 네가 만약 그런 무엄한 짓을 한다면, 신의 복수와 파라오의 혼령이 네게 철퇴를 내릴 것이다!" 반면 경비원은 이렇게 말해야 될 것 같았다. <반드시 나를 통과해야만 한다. 난 너를 막을 수는 없지만, 네가 만약 그런 짓을 한다면, 넌 나를 총으로 쏴야만 할 테고, 법정의 복수는 살인에 대한 유죄 선고로 네게 철퇴를 내릴 것이다.!>"

"그는 갑자기 기형이 된 기분이었고, 경비원의 캐리커처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으며, 자기 스스로를 비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그가 한심스러웠다. 혐오스러웠다. 자기 자신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으로 껍질을 홀딱 벗고 싶은 심정이었다."

"조나단은 권총을 꺼내 어디로든지 한 방 날리고 싶은 충동을 참기 어려웠다. 다방의 한가운데를 향하여 쏘든가, 요란하게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나도록 유리 창 한 가운데를 향하여 쏘든가, 자동차의 무리 속을 향하여 쏘든가, 길 건너에 있는 보기 싫게 높고 위협적인 큰 건물 가운데 하나를 향하여 쏘든가, 아니면 그냥 허공에 대고 위쪽으로 쏘든가, 혹은 하늘을 향해, 정말 그 뜨겁고 지겹게 짓눌러서 숨막힐 것 같은 비둘기빛 청회색의 하늘을 향해 쏘고 싶었다. 그렇게 하여 하늘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서 납처럼 무거운 캡슐 같은 세상을 부서뜨리고, 붕괴하고, 추락하여 저 흉측스럽고, 지겹고, 시끄럽고, 악취 나는 모든 것들을 다 으스러뜨려 붇어 버릴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바지에 생긴 구멍 때문에 비롯된 조나단의 분노는 결국 온 세상을 산산조각 내고, 재로 만들어 버리고 싶을 만큼 그렇게 무한하고 무진장해졌다."

"그는 그럴 인간이 못되었다. 정신적인 곤궁함과 혼란스러움과 혹은 순간적인 증오로 법죄를 저지르는 그런 정신 착란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범죄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행동으로 실행하거나 혹은 말로도 생각을 <내뱉을 능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참아내는 사람이었다."

"오후 다섯 시경에 그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한 기분에 휩싸이게 되었고, 은행 입구의 세번째 계단에 있는 기둥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어 버릴 것만 같았다......거기 그렇게 힘겹게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 한 무더기 쓰레기로 소복이 떨어져 있다가, 바람이 한 줄기 불어오거나, 청소부가 비질을 하거나, 비라도 오면 그제서야 바침내 그곳에서 멀리 날아가 버리게 되리라는 상상이 되었다."

"...엔진이 돌며 내는 작은 쇳소리였다. 그 작은 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곳속을 파고 들어와, 전기가 들어오는 것처럼 그의 몸에 있는 온 신경에 비상을 걸고 있음을 조나단은 몸의 관절이 뚝뚝 꺽이는 것과 척추가 기지개를 펴는 것으로 느꼈다. 그와 동시에 그가 어떻게 하지도 않았는데 벌리고 서 있던 오른발이 왼발 쪽으로 옮겨 가고, 왼발이 구두 뒤꿈치를 중심으로 돌고, 오른쪽 무릎이 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구부러지고, 왼쪽도 똑같이 하고, 다시 오른쪽 발이.......그 모든 것을 그는 자기 자신의 의지는 전혀 개입시키지 않고 완전히 자동적으로 했다. 그의 자각은 자신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과 뭔가를 했다는 동작만을 인식하는 것뿐이었다. 행동을 취하면서 조나단이 생각과 함께 했던 유일한 부분은 뢰델 씨의 승용차가 지나간 후 쓰디쓴 분노의 눈길을 그것을 향하여 보낸 것과 한참 동안이나 저주를 퍼부었던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다시 자기 자리로 되돌아왔을 때는 그 마지막 남은 뿔씨 같은 분노의 불길도 사라져 버렸다.....눈이 자기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고, 자기가 그 눈 뒤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생명이 없는 둥근 유리창을 통해 밖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낯선 사람의 커다란 육신에 쬐그맣게 찌그러져 붙어 있는 정령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사람들이 왜 안오는 걸까? 왜 나를 구출해 내지 않지? 왜 이렇게 쥐죽은 듯이 조용한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지?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나 혼자서는 절대로 살 수가 없단 말이야!>"

"복도는 완전히 비어 있었다. 비둘기는 온데간데 흔적이 없었다. 바닥의 오물도 다 치워져 있었다. 깃털도 없었다. 붉은 색 타일 위에서 바들바들 떨리던 작은 깃털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