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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맥서점/2000년대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 레프 톨스토이, 1908

레프 톨스토이 | 이상원 | 조화로운삶

최근 '문학인의 사치스러운 사색'에 염증이 느껴지면서 톨스토이의 책이 읽고 싶어졌고 그 때 찾은 책이다. 헤세가 나를 기존의 삶으로부터 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면 톨스토이는 기독교인으로서의 내가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러시아 정교 신자였지만 기성 종교가 가지는 허위와 기만을 가차 없이 비판했고 결국은 절대자에 대한 민중들의 선량한 믿음에서 진정한 종교를 발견했다"는 톨스토이에 대한 역자의 평. 그가 죽기 전에 가족들에게 반복해서 읽어줬다는 이 책은 소설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그의 생각을 읽기에는 정말 좋은 책이었다.

정확히 100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의 내용은 물질과 감각으로 넘쳐버린 오늘날을 사는 '현대인'에게 어떻게 읽혀질까?  사실 나 조차도 읽으면서 고집센 한 영감님의 '잔소리' 같은 느낌을 행간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주는 메세지 하나하나는  나 자신의 삶의 방향을 돌아보는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노동, 사랑, 지식과 학문, 죄, 영원한 삶, 말, 욕망, 부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지만 결국 소박한 삶에서 진리를 찾는 그의 모습은 왠지 복음서에 담긴 예수님의 가르침을 닮아 있다. (이러한 부분은 싯다르타에 담긴 헤세의 생각과도 비슷하다.)

특히 부에 대한 그의 생각은 내가 느껴오던 것을 명쾌하게 정리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보다 더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부자가 가난한 이들의 노동에 기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질서는 잘못되었다.
  부자는 가난한 이들이 농사지은 것을 먹고
  지어준 집에 살며 시중을 받는다.
  부자는 여기 그치지 않고 자선 기관을 만들어
  가난한 자를 도우면서
  스스로가 은혜를 베푼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그가 이 책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결국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 것을 배운다.(신선한 깨달음 중 하나였다.)

내가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혼란스러울 때 이 책을 읽는다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삶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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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정으로 따르는 신앙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떄는 현재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남들의 입술에 있지 않다 ]
지혜롭고 친절한 사람이 느끼는 기쁨은
그 자신의 양심에 있는 것이지
남들의 입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참된 학문]
학문은 우리를 멋지게 장식해주는 왕관이 아니라
우유를 제공하는 젓소이다.

[인생의 목적 ]
죄 때문에 받는 처벌보다는
죄에 익숙해지면서
서서히 영혼이 파멸하게 되는 것
이것이 더 무거운 벌이다.

[말을 꾸미는 사람 ]
아름답게 말을 꾸미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을 드높이려는 사람이다.
...
참된 말은 언제나 명확하여
모든 사람이 헤아릴 수 있다.

[행복의 조건 ]
행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노동이다.
그 첫쨰는 자신이 좋아하는 자유로운 일이고
둘째는 깊은 단잠을 선사하는 육체노동이다.
...
근면한 노동 습관을 갖지 못했다면
가장 큰 불행이다.
따라서 어린 시절부터 노동 습관을 길러주어야 한다.

[공통점]
착한 삶을 살려면 주위 모든 것이
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천국이 자기 안에 없다면
그 천국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누구나 ]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자기 모습을 본다.
어리석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다른 '낯선' 존재로 여긴다.

[욕망의 습관]
현재의 육체적 욕망을
억누를 수 없는가?
그 이유는 충분히
억누를 수 있었던 욕망을
습관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찾지 말라]
고통은 자신을 세상과 동떨어진 존재로 보고
자신이 결백하다고 믿을 때,
영적 성장과 고통을
연결 짓지 못할 때에만 고통스럽다.

[진정한 앎]
많은 책을 일고
다 믿어버리는 것보다는
아무 책도 읽지 않는 편이 더 낫다
책 한 권 읽지 않고서도
현명할 수 있다.
하지만 책에 쓰인 것을
다 믿는다면
바보가 되어 버린다.

[말과 침묵]
험담은 세 방향으로 해악을 미친다.
험담의 대상이 되는 사람,
험담을 함께 듣는 사람,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험담을 하는 사람 자신이다.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노동]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일하는가를 기준으로
사람을 존경해야 한다.
게으르고 부유한 이들이 존경받는 반면,
농부나 기술자처럼 노동하는 이들은
존경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는
일상적 노동을 무시하고서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

노동, 특히 흙을 다루는 노동은
몸과 영혼 모두에 유익하다.
마음에 안식을 줄 뿐만 아니라
자연에 가깝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진리]
...
공부는 학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
나쁜 책은 아무리 조금 읽어도 해롭다.
좋은 책은 아무리 많이 읽어도 부족하다.
....
성스러운 진리는
학자가 쓴 해롭고 잘못된 책보다는
무식한 이 혹은 어린아이의 말을 통해
더 자주 드러난다.

[화]
분노는 화내는 사람에게 가장 해롭다.
분노하게 된 일보다는
분노 자체가 더욱 해롭기 때문이다.

[육체노동]
나는 목수나 요리사를 만나면 부끄럽다.
그들은 내 도움이 없어도
며칠, 아니 몇 년씩 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들이 없으면
하루도 버티지 못하니 말이다.

[매일 일하라]
하루의 힘든 일을 마치고 쉬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순수한 기쁨이다.

무슨  물건이든 사용할 때에는
그것이 누군가의 힘든 노동이
낳은 결실임을 기억하라.

지옥은 즐거움 뒤에 숨어 있고
천국은 노동과 고통 뒤에 숨어 있다.

[노동하지 않는 삶]
악마가 사람 낚시를 할 떄에는 여러 미끼를 쓴다.
하지만 게으른 사람에게는 미끼도 필요 없다.
그저 찌만 던져도 물기 때문이다.
게으른 사람의 마음은 악마의 놀이터나 다름없다.

[현명한 대답]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
후회스러운 일이 백 가지 중 하나라면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해버려
후회스러운 일은 백 가지 중 아흔아홉이다.

[자기 스스로가 되어라]
우리는 지식이 많을 수록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이 아는 것은
꼭 필요한 몇 가지를 아는 것만도 못하다.

학자는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다.
지식인은 무엇이 사람들의 관심사인지 아는 사람이다.
학자나 지식인이 되려 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가 되어라.

[행복은 당신 안에]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우리가 언하는 행복은 이미
모두 주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진정한 행복의 원천은 우리들 가슴에 있다.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어리석다.
이는 마치 늘 품고 다니는 어린 양을
두리번거리며 찾는 격이다.

[선행]
아무리 사소한 일에서라도 진실을 외면하지 말라
어떻게 말하는지
혹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항상 진실을 말하도록 하라.

[자신만을 위한 사랑]
자기 자신만 좋아하는 사람은
결국 오만하게 된다.
오만은 자신만을 위한 사랑이다.

모든 인간의 평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진정한 사랑은 없다.

[과거나 미래의 일은 없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있는 것은 현재뿐이다.

[어리석은 규칙]
양심에 따라 살지 못하고
남들이 정한 어리석은 규칙과 전통을 따랐던
내 모습이 부끄럽다.

[종종걸음]
영혼이 아닌 육체에 노력을 집중하는 사람은
튼튼한 낼개로 나는 대신
가냘픈 다리로 종종걸음 치며
목적지까지 가려 하는 새와 같다.

[홀로 진리와 대면하라]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진리에서 멀어지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자신의 지적 능력으로 자기 행동에
더 많은 의문을 제기할수록
인생이 자유로워진다.

[생각의 변화]
새로 듣고 좋다고 여긴 생각이
사실은 전부터 알고 있는 것이기 쉽다.
위대한 진리는
이미 영혼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것에 만족하라]
행복하지 못하다면 두 가지 변화를 꾀할 수 있다.
하나는 삶의 조건을 낫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적 영혼의 상태를 낫게 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늘 가능한 것이 아니지만
두 번째는 늘 가능하다.

[자선]
부가 가져다주는 기쁨은 변덕스럽고 기만적이다.

조금 가졌다고 가난한 것은 아니다.
가진 것보다 더 많이 원하는 이가 가난한 자이다.

부자가 가난한 이들의 노동에 기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질서는 잘못되었다.
부자는 가난한 이들이 농사지은 것을 먹고
지어준 집에 살며 시중을 받는다.
부자는 여기 그치지 않고 자선 기관을 만들어
가난한 자를 도우면서
스스로가 은혜를 베푼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깊은 강]
주위 사람들이
모두 나쁘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너 자신도 나쁜 사람임에 틀림없다.

깊은 강의 물은
돌을 던져도 흔들리지 않는다.
타인의 무례한 말에
상심하는 사람은
깊은 강이 아닌
진흙탕 웅덩이인 셈이다.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타인에게 떠드는 이에게는
정작 자기 삶을 살 시간이 없다.

타인에게 자기가 시키는 대로 살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은
이를 위해 동원된 폭력을 정당화한다.

[매일 매일의 현명한 생각]
3
부란 분뇨와 같아서
그것이 축적되면 악취를 내고,
뿌려지게 되면
땅을 비옥하게 한다.

10
착하고 올바르게 사는데 따른
보상이 무엇인가?
그렇게 사는 가운데 기쁨을 누리는 것이
그 보상이다.
그것 이외에 다른 것을 바란다면
기쁜 마음이 없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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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톨스토이의 잠언집 3부작은 탁상용 달력으로 제작되어 판매될 정도로 대중적인 성공을 누렸지만, 문학사적으로는 큰 의미를 획득하지 못했다. 시대를 관통하는 금언과 명 구절들로 채워져 있지만, 100여 권에 달하는 톨스토이의 위대한 창작들 틈바구니에서 이 세 권의 책이 묻혀 버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의 원작이 된 'Wise Thoughts for Every Day'에 대해서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앞선 두 권의 책과는 달리 이 책은 톨스토이 자신의 깨달음을 시적으로 표현한 창작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의 끄트머리에 이르러 삶의 진리에 천착하며 끊임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졌던 대문호의 사상과 철학이 담긴 정수로서 이 책은 새롭게 주목받아야 한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에 담긴 잠언들은 의식의 허공에 떠 있는 식자(識者)의 추상적인 전언이 아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에둘러서 말하는 법도 없다.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안 한 위대한 노작가의 조급함이 느껴질 만큼 직설적이면서 직접적이다. 그만큼 구체적이며 일상적이다. 그러면서도 쉽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깨달음들로 빚은 언어들은 날카롭다. 그리고 중국의 고서를 읽는 것처럼 낯익다. 이는 앞선 두 권의 책을 만들면서 참작했던 동양의 사상이 톨스토이의 철학과 결합한 지점으로 보인다.

톨스토이가 생애 마지막으로 남긴 저작! 이 책은 그 이상의 문학사적 의미를 지니고서 독자들에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