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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없는생각/흐림 없는 눈

PD수첩,마이클 무어,그리고 에드워드 머로우

인터넷에서 마이클 무어에 대한 글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현재의 상황을 정말 잘 정리해주는 글인 것 같다...

피디수첩.......지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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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Http://www.mediamob.co.kr/cantehono/Blog.aspx?ID=213016




1.피디수첩


<피디수첩>논란이 거세다.보수언론들은 이 프로그램이,다분히 정부를 흠집내려는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팩트를 오역하여 지금의 '쇠고기 정국'의  도화선 역할을 담당했고 그것이 현 상황의 직접적 원인이라 주장한다.그들은 '괴담'이니 뭐니 자극적인 단어를 구사하며 부채질에 여념이 없고,검찰은 덩달아 문화방송의 피디들을 소환하려고 압력을 행사하며 여당의 정치인들은 눈엣가시 같은 방송 프로그램 하나를 뽑아버릴 기회라고 생각한다.언론장악이 주된 목표라고 생각하는 수구세력 역시 이 기회가 그들의 원래 목표에 다가설 절호의 챤스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진실은 사라지고 정치만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난,피디수첩의 제작진들이 의사들의 상투적 멘트 - 00 병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 에 당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방송을 대충 봤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방송제작의도를 위하여 반쯤은 고의적인 오역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이  진실에 역행하지 않는 한,그 정도의 작은 실수는 있을 수도 있는 거라고 여겼다.또한 오역과 왜곡이라면 국가대표급 실력을 자랑하는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보수언론들은,늘상 그들이 하던 짓을 <피디수첩>이 저질렀다고 짐작하고 헛된 공격을 시작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쓴웃음이 나왔었다.


그리고는 바로 마이클 무어를 떠올렸다.


2.마이클 무어

 


마이클 무어.<식코><로저와 나>,<볼링 포 컬럼바인>,<화씨 911>등 히트 다큐멘터리를 만든 전투적인 좌파 (혹은 좌파라고 여겨지는) 영화감독.그의 영화는 우선 재미있고 신랄하며 유머러스하다.인식은 국지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체를 조망하려 노력한다.물론 미국인이라는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하지만,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조국의 실상을 까발리는 데에도 부족함이 없는 다큐멘터리 계의 영웅.그가 마이클 무어다.


그는 다큐멘터리 특유의 빠른 역동성과,이슈들의 선점적 그리고 선정적 제기,목표를 파고 드는 끈질긴 집념,그리고 무엇보다 '한놈만 집중적으로 팬다'는 신나는 테크닉 때문에 이미 다큐멘터리 계통의 스타로 자리를 잡은 사람이다.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며 ,이젠 잘 나가는 스타 중의 한 사람이다.




그에게 까인 사람들의 면면 역시 화려하다.<화씨 911>에서는 현직 대통령 부씨,<로저와 나>에서는 GM의 회장 로저 스미스,<볼링 포 컬럼바인>에서는 전미총기협회 회장이자 전설적인 영화배우 챨턴 헤스턴이 글자 그대로 신나게 까였다.특히 부씨는 거의 저능아 수준으로 격하되었고,챨턴 헤스턴은 진실을 외면하려는 고집불통 늙은이 수준으로 묘사되었다.물론 그것이 완전한  픽션은 아니다.


당연히 그에게는 안티도 많았다.많은 우파세력들이 그를 공격했다.그에 대한 영화도  많았다.그러나 마이클 무어를 당해내지는 못했고,오히려 그의 팬덤을 더 강하게 구축하는 데에 일조를 하는 형편이었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들은 시원하고 통쾌하지만,한편으론 불편한 구석도 없지 않았다.부시가 바보가 되는 거야 그렇게 큰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그렇다고 부시가 우리나라 공무원들처럼 무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영화에 나오는 수많은 평범한 인터뷰어들 역시 바보가 되기는 마찬가지였다.평범한 시민의 말을 한참이나 내보내다가,'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야'식의 자신의 내레이션을 내보내기 일쑤인 그의 영화의 주된 방식에,나는 저 시민은 나중에 만들어진 저 영화를 보고 얼마나 불편할까,하는 식의 생각을 하곤 했었다.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바보로 그려지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그리고 이것도 일종의 인권유린이 아닐까,하고 웃었다.그러나 마이클 무어의 전체적인 결론이 그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그냥 그러려니 하고 말았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EBS에서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제 EIDF에서 <마이클 무어 뒤집어보기>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게 되었다.처음엔 이 영화도 그저 무어를 흠집내고자 하는 미국 우파의 그저 그런 영화라고 생각했었다.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감독인 데비 맬릭과 릭 케인은 오히려 진보 쪽에 속한다는 캐나다 출신의 영화인들이었다.처음에 그들은 무어를 옹호하기 위해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그러나 찍다 보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그들은 이내 마이클 무어의 '영화작업'에 이상(異常)을 발견하고 그 '이상(以上)'을 찍게 된 것이었다.그들은 흥미롭게도 마이클 무어의 방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무어를 공략하고 있었다.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무어를 미행하고,사람들과 무어식의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클 무어는 가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로저와 나>에서 로저 스미스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는 말은 분명한 거짓말이었으며 -물론 무어의 추후변명도 그럴싸하지만 -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의 은행총기장면 역시 꾸며진 화면이었다.( 마이클 무어는 그 영화에서 은행에 계좌를 만들기만 하면 불과 몇 분만에  마치 사은품처럼 총을 준다고 말하고 있었지만,그것은 분명한 거짓말이었다.은행이 총기를 주는 데에는 '신원조회'등의 각종 절차를 거쳐야 했으므로 총기 수령까지에는 적어도 10일 이상의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이런 거짓말들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라는 미명 하에 반성 없이 행해지고 있었다.


릭 케인과 데비 맬릭은 실재 사건의 조작과 아울러,편집의 의도적 조작까지를 모두 다 지적하고 있었는데,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거기다가 그들은 마이클 무어의 개인적인 문제까지 파고 들고 있었다.마이클 무어가 운영하는 회사의 주식 투자의 의문점과 그의 호화스런 생활방식 -그는 호화주택에 산다- 까지를 ,마치 마이클 무어처럼 집요하게 파고 들고 있었다.


말하자면,마이클 무어는 겉으로는 깨끗한 진보인 척 하지만,사실은 더할 나위 없는 위선자라는 것이었다.더구나 마이클 무어와 똑같은 방법으로 영화를 만들었으니 무어 입장에서는 별로 할 말도 없을 것이었다.


EBS에서 이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 나자 난 좀 멍해졌었다.마이클 무어가 정의의 수호자나 독수리 5형제라는 인식은 이제 사라졌다.그의 앞으로의 어떠한 문제제기에 대해서도 일말의 의심을 품어보아야 할 강한 근거를 갖게 된 것이었다.그리고 약간 화도 났었던 것 같다.그의 무기인 무대뽀,스피디함,과감함 ,축구용어로는 킥앤러쉬,농구용어로는 건앤런,야구용어로는 히트앤런이 ,바로 그의 장점이었던 것이 이제 치명적 단점으로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다음 날 생각을 좀 고쳐먹었다.그의 어쩔 수 없는 단점이 그가 제기한 문제들의 중요성을 가리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볼링 포 컬럼바인>에서 그가 제기했던,미국내의 총기규제 문제,공포를 조작 조장해서 행해지는 미국의 통치 메커니즘,미국이라는 나라의 근본적인 폭력성향은 마이클 무어라는 개인의 단점만 가지고서 덮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전체적인 맥락이 그르다고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또 무엇보다 마이클 무어는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었다..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물론 이 상황에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을 왜곡시키는 것이 정당하냐,내지 아무리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수단이 비도덕적이면 정당하지 않은 것이다.따위의 고전적인 질문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즉 마이클 무어의 기본적인 주장이 아무리 옳다 해도,그가 그 결론에 다다를 때까지 취했던 방법들의 선정성,약간의 야바위스러움,그리고 심지어 인권의 유린까지를 고려해보지 않을 수 없으며,도대체 그 '방법'들이라는 건 어느 선까지 용인되어져야 할 것인가 따위의 질문을 던져야 했었다.그러나 마이클 무어의 상대편을 고려해본다면,그들의 무도함이나 광포함을 고려해본다면 또다시 무어의 게릴라스러움도 이해가능했던 것이다.


피디수첩의 상대방들은 무어의 상대방들보다,어쩌면 더 비열하고 노골적이며 비신사적인 존재들이다.왜곡과 선정보도라면 올림픽 금메달 깜인 수구신문들과,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아온 분을 수장으로 모신 행정부,누가 정권을 장악하느냐에 따라 몇 년에 한 번 씩 내장과 두뇌를 성형수술해버리는 검찰 관계자들이 피디수첩의 상대방들인 것이다.게다가 시사프로그램의 특성상,이슈가 사라지기 전에 방송해야만 하는 시간적인 촉박함이라는 요소도 있었을 것이다.문제는 크고 배후는 미국인 것이다.피디수첩이 처한 상황 역시 최악인 것이다.


그러나,만약 피디수첩의 의도적인 오역이 사실이라면,어느 선까지 '마이클 무어'식의 방법을 용인해야 하는 것일까? 어디까지 정상참작이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그런 기준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3.그러나..

이런 생각이야말로 오류가 아닐까? <피디수첩>의 방법적 측면을 공격하기 앞서서 그들이 제시한 논점이 얼마나 팩트에 근접하느냐 하는 것을 따지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피디수첩의 반대편에 속하는 자들이야말로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스타일에 속하는 자들인 이 마당에,우리는 엉뚱한 길 위에서 엉뚱한 곳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그런 생각이 들었다.다시 말해 피디수첩의 제작방식을 트집 잡기에 앞서,애초에 그들이 제시했던 의문점,미국 소는 과연 안전한가,또한 미국 내에서 인간광우병으로 의심되는 환자들이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또한 그런 결론을 생각하기에 앞서서,피디수첩의 '의도'만을 따지고 드는 것은 조중동의 익숙한 낚시질에 또 한 번 빠져드는 것이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인터넷을 떠다녀 보고,각종 논문들을 찾아보고,심지어 미국의 의사들에게 전화까지 걸게 되었다.그러다가,무엇보다 놀란 것은 흔히 말하는 mad cow disease 에 이환되었다고 의심 받거나 스스로 의혹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환자와 그들의 가족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미국의 경우,인간광우병에 대한 시민사회의 관심은 언제나 일정수준 이상 존재해왔으며,그것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거나,아주 '의심스러운'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다.거기에 미국의 쇠고기들은 계속 리콜되고 있고 말이다.그냥 다른 곳 떠나서 구글에 이미지 검색만 해 보아도 상황은 그냥 알게 되더라 이 말이다.아무 것도 확실나게 결론난 것은 없었다.


여기에 반응하는 미국 정부의 공식입장은 언제나 CDC(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 나 NPDPSC(국립프리온질병병리학감시센터) 그리고 미국 농무부에 의해 대변되고 있을 뿐이다.그들은 공식적으로 인간광우병의 발병을 부인하고 있으나,말의 뉘앙스로 볼 때,'현재까지는 없다'라고 하는 것 뿐이다.즉 '아직까지는 발견된 것이 없으나,우리는 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는 것이다.미국의 의사들 역시 마찬가지다.'강하게 의심되기는 하지만,뭐라 딱히 말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는 수준이다.우리가 이런 경우 '의심'쪽을 택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자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조중동의 입장은 언제나 앞서 말한 미국정부의 세 곳 공식기관의 말만을 따른다.자국 국민의 건강 문제를 외국 기관의 발표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그것도 순식간에 말을 바꿔가면서 말이다.언론의 교과서적 정의에 따라 문제를 파헤치려는 자국의 언론기관을 외국기관의 견해에 따라 거짓말쟁이로 몰고 가는 것이다.


그것은 이들이 언제나 모든 문제를 이명박 대 반이명박,기득권 대 반기득권 의 프레임으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그러면서 자기 직업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다.따라서 <피디수첩>의 방법적 측면 만을 문제 삼는 것은 분명히 또 하나의 오류인 것이다..


설령 <피디수첩>이 그들의 프로그램에서 잘못된 결론을 내렸다 하더라도,그런 '의문'을 갖는 것은 아주 당연하고,또 꼭 그래야 할 만한 사람들이 존재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4.<굿 나잇 앤 굿 럭>

여기서 생각난 영화가 <굿 나잇 앤 굿 럭>이다.


 언론을 다룬 수많은 영화들 중 가장 멋진 영화들 중 하나로 자리매김될 영화가 바로 이 영화이다.이젠 광채까지 나기 시작하는 죠지 클루니가 감독하고 데이빗 스트라던이라는 숨겨진 영화배우가 타이틀 롤을 맡아 열연한 영화로 , 부끄럽고 광끼에 가득 찼던 한 시대인 매카시즘 시대의 종말 순간을 그린 작품이다.


긴박하고 절제된 흑백화면 내부로,시대의 광끼와 싸우던 언론인들의 품격이 가득 차 흐르던 영화였다.

주인공은 미국 CBS의 시사프로그램인 의 진행자 에드워드 머로우와 그의 팀이다.때는 1953년이었고,매카시와 그 패거리들이 빨갱이 사냥에 여념이 없던 때였다.그리고 주인공들은 바로 그들과 싸움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영화의 언론인들 역시 좌익분자들을 색출해내려는 시대의 분위기에 전전긍긍해하고 불안해 하기는 마찬가지다.주인공 머로우 역시 그렇다.겉으로는 담대한 표정을 짓지만,영화의 순간순간 그의 얼굴엔 불안함과 지쳐감,그리고 공포감이 언뜻언뜻 나타났다가 사라져간다.그러나 매카시의 문제를 완전히  비껴갈 수는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안다.그때 때마침 머로우 팀의 레이다에 라둘로비치라는 공군장교의 사연이 걸려든다.


디트로이트의 작은 지방신문에 게재된 기사로,부친의 좌익경력 때문에 정당한 절차도 없이 공군에서 쫓겨난 장교의 사연이었다.더구나 라둘로비치는 아버지와 누나를 공산주의자라고 고발하라는 압력까지 받고 있다는 것이다.그들은 바로 이 사건을 가지고 싸움을 시작하려고 결심한다.


말하자면 외곽을 때리는 것이다.이 '좌익사건'을 건드리려면 결국 필연적으로 매카시와의 전투로 발전해나가리라는 것을 <SEE IT NOW> 의 제작진은 처음부터 알고 있다.말하자면 '의도'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전국적인 화제가 되는 사건이 아님에도 ,머로우의 팀은 이 사건이 연좌제나 부모 고발,그리고 군 문제 - 당시 매카시는 군과 사이가 나빠지고 있는 상태였다- 같은 충분히 무기가 될 수 있는 이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부터 알고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또한 그들의 프로그램 '제작방식'이 완전히 순수한 것도 아니다.그들도 편집하고 짜깁기한다.필요한 증언은 채우고,필요 없는 증언은 빼버린다.마이클 무어처럼 아예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어쨌든 짜서 깁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역풍이 불어 온다.과거 피디수첩이 겪었던 것처럼,광고주의 압박 ,정보부와 군대의 압력,사장의 해고 위협 (그러나 CBS의 사장은 끝끝내 머로우 팀의 방송편집권을 앗아가지는 않는다),반대편 언론의 공세에 직면한다.우파논객은 머로우의 팀에게 좌파 딱지를 붙이고,그들의 방송이 '불순한'의도로 화면을 짜깁기하고 있다고 공박한다.머로우의 과거를 왜곡하고 방송국의 다른 직원까지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인다.(그 직원은 결국 자살한다)



<군 당국이 SEE IT NOW의 연출자 죠지 클루니를 압박하는 장면이다>

머로우는 이제 타겟을 죠 매카시 의원 본인에게 맞춘다.영화는 당시의 실제 기록화면을 보여주며 머로우 팀의 활약을 보여주고,에드워드 머로우와 매카시의 일대일 대결 이후에 결국 매카시는 낙마하고 만다...전적으로 머로우의 활약 때문만은 아니지만,민주주의는 이렇게 해서 그 명맥을 이어 간다.


다이앤 리브스가 부르는 재즈 넘버들에 의해 한결 부드러워지고 멜랑콜리해지는 이 영화의 어떤 장면에서,CBS의 사장은 머로우와 조지 클루니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 자넨 자네 생각을 마치 진실처럼 전하고 있어.

그리고 또 얘기한다.

-왜 처음부터 나서지는 않았나?


매카시즘의 초창기,많은 사람들이 잡혀가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심지어 전기의자에까지 앉을 때는 왜 매카시와 싸우지 않았나,하는 이야기이다.

머로우는 사실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그는 그저 싸우기만 할 뿐이다.담배를 문 채 방송을 하고,약간은 비겁하지만 그래도 방송에 집중한다.방송국의 사장 역시,힘겨운 외부 압력과 싸우지만 머로우의 방송 편집을 강제로 방해하지는 않는다.



(실제의 에드워드 머로우이다.)



(이 사람은 영화 속 에드워드 머로우,데이빗 스트라던이다.)

영화 속 방송국 사장의 말은 옳다.머로우의 팀은 처음부터 나서지도 않았으며,의도를 가지고 방송한 것이 분명하다.그러나 그것이 방송이다..


5.진실은 습관이며 지형이다.불행히도..



(매카시다.우리는 수많은 미니미 매카시를 가지고 있다.그래서 어쩐지 낯설지 않다)


사실 피디수첩과 에드워드 머로우,그리고 마이클 무어의 경우는 서로 같지 않다.결코 동일시해서는 안된다.적어도 머로우는 피디수첩처럼 검찰 수사를 받은 것도 아니었고,정권 차원의 압박에 시달리지도 않았었다.또한 피디수첩 보다 훨씬 노련하고 교묘하게 사건에 접근했다.또한 머로우와 그의 팀은 살아있는 권력과 싸웠던 것도 아니었다.죠 매카시는 그의 권력의 정점에서 점점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와중이었다.머로우는 매카시가 한참 권력의 정상에 있을 때는 그를 건드리지 않았었다.


마이클 무어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조금은 자유로운 신분을 가지고 있어서 앞선 두 그룹 보다 훨씬 자유롭게 자신의 적들을 공박할 수 있었다.


이렇게 진실을 캐는 사람들 앞에는 서로 다른 일종의 지형이 놓여 있다.피디수첩이 오역이나 오류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그들의 앞에 놓인 지형은 우리나라 언론의 현주소와,넓게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수준과 연관이 있다.YTN의 사장선임 주주총회(부부총회라고 오타를 날렸었다) 는 30분도 아니라 30초에 끝이 나는 상황인 것이다.그것도 용역들의 보호 아래.


언론을 통째로 말아잡수시려는 현정부와 그들의 세력 한가운데에 몇몇 신문과 방송국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다.유일한 우군은 인터넷이고 말이다.피디수첩이 어떤 말을 한다 해도,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말은 이 '지형'속에서 받아들여지게 되어 있다.물론 '조중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조중동은 쉼없이 피디수첩에게 '지형 속 딱지'를 갖다 붙일 것이다.피디수첩에게 방통심의위가 사과명령을 내린 것도 이런 지도 위에서 벌어진 일이다.이제 진실은 지형 속에서 벌어지는 진지전이 되고 말았다.


에드워드 머로우는 피디수첩 보다 훨씬 유리한 지형 위에 서 있었다.그것은 머로우의 팀이 문제를 제기할 무렵에 이미 매카시의 힘이 빠지고 있었다는 사실과도 연관이 있다.(매카시가 지나치게 오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CBS의 사장은 머로우에게 '왜 이제야 나서느냐'며 그의 아픈 곳을 찔렀던 것이다.


그러나 머로우에게는 또 하나의 무기가 있었다.그것은 그의 진실이 '습관'이며 '감각'이라는 사실이다.어떤 사람의 말이 지형 속에서 자유로워지려면,그의 말이 언제나 '습관적으로' 진실이며,또 언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감각'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머로우는 바로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그래서 그의 방송은 언제나 '먹혔던' 것이다.반면 마이클 무어는 '감각'은 가지고 있으되 '습관'은 아주 젊은 날에 팔아먹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피디수첩'에게 그 '감각'과 '습관'을 요구해야 한다.그리고 이 험악한 지형 위에서 그들의 편을 열심히 들어야 한다.하나가 무너지면 연달아 무너진다.그리고 그런 속성은 상대방에게도 마찬가지다.나는 사회의 한복판에서 진지전과 포격전을 본다..